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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기록한 사람> 꽃이 되는 모든 과정이 꽃이다 - 생태만화가 황경택

대한민국 산림청 2018. 7. 12. 14:30





 타인을 이해하는 일에 대해 생각해보자. 그가 태어난 날짜나 이름, 몸무게, 키 따위의 정보가 필요하진 않다. 그 사람이 살아온 과정을 아는 게 더 중요하다. 자연을 이해하는 일도 마찬가지. 그들의 이름을 외우는 것보다 그들의 삶과 이야기에 귀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생태만화가 황경택은 분류학이 아닌 관점을 통해 자연에 접근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렇게 자연을 이해하는 일은 곧 우리와 우리가 사는 세상을 이해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고 덧붙인다. 




 만화가가 자연을 이야기할 때


스무 살, 외교관의 꿈을 안고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학과에 입학했다. 막상 대학 공부에 재미를 느끼지 못했고 연극과 마당극에 깊이 빠져들었다. 대학 4학년에는 취업도 포기하고 만화가가 되려고 했다. 어린 시절 만화 보다 책을 좋아했고, 동네 형과 취미로 그림을 그리던 게 전부였다니 꽤나 엉뚱한 결심이다.


“대본을 쓰고, 연출을 하고, 연기를 하는 과정이 참 재밌었어요. 생각을 정리하고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일에 희열을 느꼈고 깊이 빠져든 거죠. 하지만 여러 사람이 함께 하는 작업인지라 다른 이와 의견이 부딪히는 게 당연한데도, 그땐 그게 참 싫었어요. 온전히 혼자 몰입할 수 있는 만화를 그려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컷을 나누고, 장면을 그리고, 이야기를 꾸리는 만화와 연극은 일맥상통한 면이 있다. 결국 만화가로 데뷔한 것이 서른 살. 어떤 만화를 그릴 것이냐를 고민했고, 시골에서 나고 자란 그에게 가장 친숙하고 관심 있는 분야였던 자연에서 답을 찾기로 했다. 그렇게 생태만화가로서 황경택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처음 1년은 도서관과 서점을 전전하며 자연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매일 스케치북을 들고 나가 나무와 풀, 꽃을 관찰하고 그림으로 기록하는 일도 꾸준히 했다. 자연을 더 이해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숲해설가도 됐다. (사)숲연구소에서 생태체험 프로그램을 개발했고, 아이들과 소통하는 만화가이다 보니 자연스레 생태놀이에 관심을 갖고 이를 기획하기 시작했다. 숲해설가들의 선생님이라고도 불릴 만큼 생태놀이, 자연관찰 드로잉, 숲 해설에 관한 그의 강의는 늘 인기다.


생태만화가라는 직업 외에도 그가 하는 일은 이렇듯 다양하지만 그 바탕은 모두 자연에 있다.


“자연은 늘 가까이 있죠. 심지어 우리가 입고 있는 옷이나 지금 앉아있는 테이블과 의자도 자연에서 온 것들로 만들었어요. 게다가 우리 역시 자연에서 왔어요. 그러니 꼭 직업인이 아니더라도 자연을 알아야하고, 관심을 가져야하는 건 당연해요. 사람들이 자연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저 같은 사람이 해야할 일이기도 하고요.”







 알려주려 하지 말고 함께 알아가기


그에게 자연을 관찰하고 그림으로 기록하는 일은 꽤나 중요한 작업 중 하나다. 관찰을 통해 얻은 기록과 지식들로 숲 해설을 하고, 생태놀이 프로그램을 만들고, 만화에 쓸 이야기도 얻는다. 그의 드로잉 작업과 만화, 생태놀이 프로그램, 숲 체험 프로그램을 담아낸 서적만 해도 수 권에 달한다. 《오늘은 빨간 열매를 주웠습니다》, 《꽃을 기다리다》, 《주머니 속 자연놀이 100》, 《숲 해설 시나리오 115》, 《아이들이 행복해야 좋은 숲 놀이다》, 《만화로 배우는 주제별 생태놀이》, 《자연물 그리기》, 《엄마는 행복한 놀이 선생님》, 《숲은 미술관》을 비롯해 어린이 만화동화 《식물탐정 완두, 우리 동네 범인을 찾아라》와 《꼬마애벌레 말캉이》 등이다. 가장 최근작은 지난 3월에 낸 《숲 읽어주는 남자》이다. 그의 책들을 살펴보면 하나의 큰 축을 더듬을 수 있다. 바로 자연을 보는 인문학적 해석, 즉 ‘관점’이다. 생태분류학 같은 지식이 아니라 숲 속 생물의 삶이 우리 삶과 얼마나 밀접한지, 자연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록들은 인간의 삶과도 맞닿아 묘한 울림을 준다. 가령 잎과 꽃이 피어나는 순서가 불규칙한 개나리꽃을 보고 자연의 본질을 ‘알 수 없음’이라 칭하는 대목 등이 그렇다.


“숲해설가 분들을 만나면 식물의 종류나 이름을 외우는데 급급한 경우를 많이 봐요. 그런데 꽃 이름이 뭐냐고 물어보는 아이에게 정확한 학명을 알려줄 필요는 없어요. 그 꽃의 이름을 함께 지어주는 게 더 좋은 숲 체험이죠. 어른에게도 마찬가지에요. 자연에서 새로움과 아름다움을 찾아주고, 자연의 언어와 이야기를 쉬운 말로 통역해주는 ‘Interpreter’가 숲해설가에요.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숲을 바라보는 방법을 알려주는 겁니다.”







 사랑하는 것은 기다리는 일


그가 지도하는 생태놀이 프로그램을 살펴봐도 그만의 철학이 그대로 묻어난다. 아주 단순하기 때문이다. 숲속의 솔방울을 찾아보는 것, 솔방울을 찾는 과정에서 발견한 것을 말해보는 것, 솔방울의 감촉을 느껴보는 것. 이 사소한 과정들이 다 놀이거리다. 노는 동안 대상에 대해 깊이 사유하고 친해질 수 있다. 그가 깊은 산속의 숲보다 보도블록 틈에서 자라나는 풀, 집앞에 있는 가로수와 공원의 나무, 화단에 있는 꽃들을 기록하는 이유도 그렇다. 오래 기다리고, 자주 들여다 볼수록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사진이 아닌 그림으로 자연을 이해하는 일도 그렇다. 한 번 찍고 말 것을, 그림을 그리면 열 번도 백 번도 더 들여다보게 된다.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상상하고 더 탐구하게 되며 생에 대한 더 깊은 관심으로 이어진단다.


“사람들 대부분은 벚꽃이 피기 전에는 그게 벚나무인지 잘 몰라요. 그런데 그 나무에게 꽃이 피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죠. 식물의 생애에서는 그저 한 단계일 뿐이에요. 그러니 온전히 이해하려면 처음부터 끝까지 다 봐야 해요. 그래서 기다리고, 오래 관찰하고, 가까이 있는 것들을 자주 들여다봅니다.”


추운 겨울에도 씨앗에 에너지를 모으고, 싹을 틔우고, 뿌리를 뻗고, 새잎과 줄기를 만들고, 천적을 막아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든 치열한 과정을 알아야 꽃의 진짜 아름다움을 알 수 있다. 그러니 꽃이 피는 과정이 모두 꽃이라고 말하는 그다. 그의 책 《꽃을 기다리다》에서 ‘결국 우리가 꽃을 보고, 기다리고, 사랑한다는 것은 식물의 온 생을 지켜보고 응원하는 일이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썼듯. 우리 삶에도 집요한 기다림과 온전한 이해의 마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서로에게 그 마음들이 자꾸 가닿았으면 좋겠다. 황경택 생태만화가의 손길과 시선이 흰 스케치북에 가닿듯이 말이다.




황경택 생태만화가


만화가이자 생태놀이 코디네이터이다. (사)우리만화연대, (사)숲연구소에서 활동했다. 숲에서 그림을 그리며 배운 지혜로운 동식물의 생존방법을 알려주기 위해 만화를 그리고 재미있는 생태놀이도 만들어내고 있다. 2009년 부천만화대상 어린이만화상을 수상했다.





※ 본 콘텐츠는 산림청 격월간지 '매거진 숲'에서 발췌한 기사입니다. 무단 복제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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