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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기록한 사람> 그레이트 히말라야 브라보 마이 라이프 - 산악인 박정헌 대장

대한민국 산림청 2019. 1. 21. 16:00




 산악인 박정헌 대장은 ‘산은 곧 삶’이라 말한다. 산을 오르내리며 보낸 20년이 넘는 시간 속엔 삶의 기쁨과 슬픔, 웃음과 눈물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 산은 꺾이지 않은 용기를 가르쳐준 삶의 스승이었고, 이제 그는 산을 카메라에 담으며 많은 이들에게 삶의 교훈을 전하고 있다.


 10대 소년, 히말라야를 마음에 품다

1989년,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18살 소년 박정헌의 눈에 비친 히말라야는 참 거대했다. 너무나 거대해 두려웠고, 존경스러웠으며 또 아름다웠다. 중학교 때 우연히 산과 인연을 맺은 그는 ‘경남의 무서운 10대’로 불렸다. 고등학생 때 ‘최연소 북한산 인수봉 연장등반’과 ‘최연소 설악산 토왕빙폭 완등’이란 기록을 세웠고, 이를 눈여겨본 선배들은 그를 히말라야 초오유(8,201m) 원정에 데리고 갔다. 비록 이 등반은 성공을 거두지 못 했지만 그날 이후 소년 박정헌의 마음엔 ‘히말라야’라는 거대한 산이 솟아났다.




“군대를 다녀와 1994년 히말라야로 갔습니다. 5년 만에 다시 만난 히말라야는 여전히 아름다웠어요. 경남연맹 원정대에 참가해 히말라야 3대 난벽(難壁) 가운데 하나인 안나푸르나(8,091m) 남벽을 올랐어요. 저는 셰르파 3명과 함께 정상 등정을 위한 최종 대원으로 선택되었고, 결국 정상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셰르파의 도움을 받아 정상에 올랐다는 자책감이 들더 라고요. 좀 더 주도적인 등반을 위해서 체력을 기르고 등반기술을 연마했어요.” 이듬해 그는 자신의 능력을 테스트하고자 에베레스트(8,850m) 남서벽에 도전했고, 셰르파들을 이끌며 정상을 밟았다. 한국 최초의 에베레스트 남서벽 등정이자, 세계에선 4번째로 이룬 쾌거였다. 이어 2000년에는 K2(8,611m) 남남동릉을 무산소로 등정했으며, 2002년엔 시샤팡마(8,027m) 남서벽에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며 등정에 성공했다. 그렇게 소년 박정헌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히말라야 거벽 등반가로 우뚝 섰다.






 절망 끝에서 마주한 새로운 희망

인터뷰가 진행된 곳은 경상남도 진주시에 자리한 예티 클라이밍짐이다. 박정헌 대장이 운영하는 곳으로, 그가 찍은 히말라야 사진이 곳곳에 걸려있다. 그 중엔 그가 히말라야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도 있다. 험준한 히말라야 거벽을 등반하던 그가 패러글라이딩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박정헌 대장은 2005년 후배 최강식 대원과 함께 촐라체(6,440m) 북벽 등정길에 오른다. 사흘 간의 등반 끝에 정상에 올랐으나 하산 길에 최강식 대원이 크레바스(빙하가 갈라져서 생긴 좁고 깊은 틈)에 빠지는 사고를 당했다. 박정헌 대장과 최강식 대원은 로프로 서로의 몸을 묶고 있었기에 박정헌 대장까지 크레바스에 빠지지는 않았으나, 갈비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했다. 최강식 대원 역시 두 다리가 모두 부러졌으나 두 사람은 포기하지 않고 9일간의 사투 끝에 생환했다. 박정헌 대장은 이 사고의 여파로 손가락 여덟 개와 발가락 일부를 잃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살아 돌아온 것은 기적이었지만, 이제 다신 히말라야 거벽을 오를 수 없었다. 산이 곧 삶이었던 그가 넘어야 할 절망의 벽은 까마득히 높기만 했다.




“사고 후 2년 여간 참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돌아보면 절망을 밀어내려만 하지 말고 받아들이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어요. 절망이나 실패도 인생의 한 부분이니까요. 실패를 두려워하면 우리는 한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겠죠. 하지만 우리는 절망에 빠지거나 실패의 늪에서 허우적거릴 때도 앞으로 나아가야 하고, 그럴 때 새로운 희망이 생겨난다고 믿습니다.” 히말라야를 떠날 수 없었던 그는 다시 히말라야로 돌아갈 방법을 고민했다. 그렇게 2011년 박정헌 대장은 패러글라이딩으로 2,400km에 달하는 히말라야 동서 산맥을 횡단했다. 2014년에는 베율(티베트 불교에 예언된 전설의 낙원)을 찾아 180일간 카약과 스키, 패러글라이딩, 산악자전거로 히말라야를 무동력 횡단하기도 했다.





 아름다움을 향해 나아가라

박정헌 대장은 패러글라이딩과 자전거 등으로 히말라야를 넘는 과정을 사진에 담았다. 그리고 이를 모아 지난 5월 <그레이트 히말라야> 사진전을 열었다.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수천 장의 사진을 보고 또 봤습니다. 사각 프레임을 통해서 보니 모든 산의 높이가 같더라고요. 그간 고도 지향적인 등반을 많이 했는데 이번에 새삼 산의 높이에 대한 생각을 지울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 내내 박정헌 대장은 ‘아름다움’이란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18살 소년의 눈에 처음으로 비친 히말라야가 그러했듯, 그는 히말라야를 오르내리며 거대한 아름다움을 느꼈다고 말한다. 복잡하고 정신없는 도시를 떠나 아무 것도 없는 자연에 설 때면, 뭔지 모를 아름다움과 평화가 차오른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는 내후년에 세상의 아름다움을 찾아 세계를 한 바퀴 도는 ‘세계 대탐험’을 떠날 예정이다. 이를 사진과 영상으로 꼼꼼히 남겨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 소개할 계획도 갖고 있다. 또 언젠가 세계적인 산악박물관을 세우리란 꿈도 있다. 아름다운 산의 모습을 마음껏 감상하며, 체험과 교육도 할 수 있는 종합 문화예술 공간으로 만들 예정이다. 





“우리는 지구란 별에서 살고 있지만 모두가 똑같은 풍경을 보는 건 아닙니다.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는 이유도 뭔가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서가 아닐까요? 촐라체에서의 사고 이후, 누군가 왜 다시 히말라야에 가려하냐고 물은 적이 있어요. 저는 ‘아름다움 때문’이라 대답했습니다. 이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히말라야만의 아름다움 때문이요. 앞으로도 세상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나고 싶고, 이를 기록해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히말라야 촐라체에서 갈비뼈가 부러졌을 때에도, 손가락과 발가락 일부를 잃었을 때에도 그는 삶의 희망을 놓지 않았다. 간절한 마음으로 지켜낸 희망을 가득 품고 박정헌 대장은 아름다움을 향해 나아간다.




박정헌 대장
1989년 초오유 동계 남동벽 등반을 시작으로 2004년부터 안나푸르나 남벽, 에베레스트 남서벽, 초오유, 시샤팡마 중앙봉, 낭가파르밧, K2 토모체센, K2 남남동릉 등을 등정했다. 2002년 시샤팡마 남서벽의 새로운 루트를 개척했고 2005년 히말라야 촐라체 북벽 등정에 성공했다. 2012년 세계 최초로 패러글라이딩으로 히말라야 산맥을 종단했고 2014년 파키스탄-티벳-중국-무스탕-네팔-인도를 스키, 카약, 자전거, 트레킹 등으로 무동력 횡단했다.

 




※ 본 콘텐츠는 산림청 격월간지 '매거진 숲'에서 발췌한 기사입니다. 무단 복제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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