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est 소셜 기자단 -/2019년(10기)

하늘이 숨긴 명당 천장산 아래 자리한 의릉

대한민국 산림청 2019. 3. 13. 17:00


명당터 천장산 아래 자리한 의릉



 산악지형이 국토의 70%인 나라답게 수도 서울에도 크고 작은 산들이 많다. 성북구에 자리한 천장산이 좀 특별한 건 세계문화유산인 조선 왕릉을 품고 있어서다. 산의 한자어 이름도 남다르다. 천장(天藏)은 불교에서 사찰의 입지조건으로 꼽는 가장 빼어난 명당 터로서 ‘하늘이 숨겨놓은 곳’ 이란 의미라고 한다. 


이러한 연유로 천장산 일대는 조선 왕족의 묘지가 많이 조성되었는데 조선 20대 왕인 경종(景宗)과 부인이 잠들어 있는 의릉(懿陵)이 자리하고 있다. 또 연산군의 생모 폐비 윤씨의 묘도 이곳에 조성하였는데 훗날 연산군이 왕릉의 규모를 갖추고 회릉(懷陵)으로 격상시켰으나 중종반정(中宗反正)으로 연산군이 폐위되자 다시 회묘로 격하되었다.



울창한 숲길 위로 산책하기 좋은 천장산

나이를 먹으면서 껍질이 붉게 변하는 적송



이후 연산군의 왕비였던 신씨의 묘까지 이곳에 조성되었다가 지금은 모두 이장되었다. 의릉이 있는 동네 석관동(石串洞)은 천장산의 한 지맥이 돌을 꽂아 놓은 듯이 보여 돌곶이 마을이라고 하던 것을 한자명으로 옮긴 것이다. 동네에 6호선 전철역 이름도 돌곶이역이다.  


의릉을 돋보이게 하는 천장산은 해발 140m 정도로 낮고 완만하며 숲이 울창한 산이라 산림욕하며 걷기 좋다. 왕릉답게 소나무와 잣나무가 많이 살고 몸체가 용틀임하듯 자라나는 향나무가 눈길을 끈다. 안내판에 무려 160살이라고 적혀 있었다. 소나무 가운데 나이를 먹으면서 껍질이 붉어지는 적송(赤松)들이 살고 있어 신묘한 기분이 들었다.   


도토리나무라 불리는 활엽수 참나무도 많다. 떡갈나무·굴참나무·신갈나무·졸참나무 등 형제가 많은 참나무류 가운데 상수리나무에 이름표를 붙여 놓았다. 상수리나무는 도토리가 크고 맛이 좋아 수시로 임금의 수라상에 올랐다 하여 이름 붙은 나무로 왠지 왕릉과 잘 어울렸다. 



조선 20대 임금 경종과 부인이 잠들어 있는 의릉

제사 때 조상신과 왕이 오가는 길

의릉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수령 160살의 향나무 



경종 임금의 성정이 이름에 담겨있는 의릉


의릉은 조선 20대 경종(이윤, 1688~1724)과 그의 비인 선의왕후 어씨(1705∼1730)의 무덤이다. 연도를 보면 알 수 있듯 경종은 37살, 부인은 26살에 돌아가셨다. 경종의 어머니는 역사 드라마에 자주 나왔던 희빈 장씨(장희빈)다. 경종은 13살 세자시절 어머니가 사약을 받고 죽음을 맞는 비극을 목도해야 했다. 

     

게다가 태양왕으로 불리며 46년간 장기 집권했던 아버지 숙종과 달리 불과 4년의 재임기간 후 승하했다. 몸이 허약했던 경종은 자손 없이 죽고 이복동생이었던 영조가 임금 자리를 이어받는다. 조선왕조 500년 역사에 이렇게 짧게 별 흔적 없이 조용히 가신 분들이 또 있을까 싶다.  


능에 들어서면서 보이는 의릉의 한자어 의(懿)가 궁금해 관리소에 물어보니 아름답다, 훌륭하다라는 뜻이 있단다. 후대인 영조 때 지은 것으로 경종임금의 성정이 담겨 있다고. 알고 보니  조선 왕릉은 명칭 속에 저마다의 뜻을 품고 있었다. 

     

관리소 직원 아저씨가 알려준 왕릉 이름 가운데 ‘사릉’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어린 나이에 권력다툼에 희생된 조선시대 6대 임금인 단종의 부인 정순왕후가 묻힌 능으로, 비명에 간 단종을 생각하며 여생을 살았을 것이라 여겨 무덤의 이름을 사릉(思陵)이라 지었다고.




매년 10월 기신제를 지내는 의릉

왕릉 곁을 지키고 서있는 석호의 꼬리가 이채롭다

정자각 지붕위에 있는 재밌는 잡신



무덤 앞에 있는 정자각에서는 매년 10월 둘째 일요일에 기신제(忌辰祭)를 지낸다는 안내판과 함께 제사상의 전통규범을 보여주는 제수진설도가 그려져 있어 눈길을 끌었다. 문화해설사는 우리가 흔히 알던 홍동백서, 조율이시, 어동육서 등의 차례상 규칙은 <주자가례(가정에서 지켜야 할 예절을 담아놓은 책)>에도 나오지 않는다고 알려주었다. 이는 1960년대 이후 만들어진 전통이라고 한다.  


왕과 왕후가 잠들어 있는 능침은 일반인의 접근이 금지되어 있지만, 문화해설사의 왕릉 설명시간엔 잠시나마 능침을 가까이에서 둘러볼 수 있다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 2시). 왕릉은 왕과 왕비의 봉분을 앞뒤로 배치한 형태로 이를 동원상하릉(同原上下陵)이라 한다. 왕은 위쪽, 왕비는 아래쪽에 모시는 구조다. 조선시대 왕릉 가운데 효종과 인선왕후 장씨가 묻힌 여주의 영릉(寧陵)이 같은 구조라고 한다. 


무인석·문인석등 능침을 지키는 석물 가운데는 동물도 있는데 당시엔 신성시 되었다는 산양과 호랑이가 눈길을 끌었다. 특히 석호는 무섭기는커녕 민화 속 호랑이마냥 친근한 표정을 짓고 있고, 등으로 말려 올라간 꼬리까지 재밌게 표현했다. 정자각 등 능 옆 한옥건물 지붕에 있는 잡상은 만화에 나오는 주인공 같다. 맨 앞에 앉아있는 장수처럼 보이는 잡상은 조선판 ‘쩍벌남’이지 싶어 웃음이 난다. 경건하고 엄숙한 왕릉이지만 해학과 익살을 잊지 않았던 조상들의 감성을 느끼게 된다.

     



까치들이 편안하게 집을 짓고 사는 의릉

의릉 둘레길에서 보이는 옛 중앙정보부 건물


복구 이전 의릉은 정자각까지 석교가 놓였고 정자각 앞은 연못과 일본식 정원이 조성됐다. - 의릉관리사무소




중앙정보부 청사가 들어섰던 의릉 

     

의릉은 능의 주인인 경종과 부인이 순탄치 못한 짧은 삶을 살다간 것과 같이 여러 고난을 겪었다.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의릉이 다른 왕릉에 비해 규모가 작고 시민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를 알게 됐다. 이곳은 과거 30여 년 동안 일반인이 접근할 수 없었던 철저히 봉쇄된 지역이었다.  


1962년 초대 중앙정보부장이었던 故김종필씨는 의릉을 중정청사로 택한다. 지금이야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당시엔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녔던 국가정보기관이었기에 가능했다. 이후 1996년 중정청사가 이전하면서 비로소 능은 시민들에게 공개된다. 하지만 중앙정보부청사 자리는 오롯이 의릉에 귀속되지 못하고 한국종합예술학교 건물이 들어섰다. 

     

의릉은 중앙정보부 청사가 떠나면서 오랜 기간 복원공사를 해야 했다. 왕릉 홍살문과 정자각 사이에 연못과 정원·조명시설을 만들고, 능 한편에 축구장·테니스장을 조성하는 등 심하게 훼손되었기 때문이다. 10년 넘게 인공연못을 없애고 금천교를 복원하는 등 정비를 마치고 현재의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의릉 둘레길을 걷다보면 옛 중앙정보부 강당 건물을 볼 수 있다.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발표를 했던 역사성 때문에 등록문화재 제 92호로 선정됐다. 현재 시민들을 위한 각종 강연과 행사장으로 쓰이고 있다.  


* 의릉 소재지 : 서울 성북구 화랑로 32길 146-20 (석관동)

* 의릉 관리소 : 02-964-0579









※ 본 기사는 산림청 제10기 블로그 기자단 김종성 기자님 글입니다. 콘텐츠의 무단 복제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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