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est 소셜 기자단 -/2019년(10기)

<경주 가볼만한 곳> 소나무 숲이 인상적인 경주 효소왕릉과 성덕왕릉

대한민국 산림청 2019. 3. 14. 17:00



  

 보통은 겨울이 되면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를 보기 마련입니다. 그럼에도 소나무는 사계절이 푸른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요. 특히 이러한 소나무는 우리가 왕릉이라고 부르는 곳에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때문에 여름에 가도, 겨울에 가도 왕릉은 언제나 푸른 녹음을 느낄 수 있는 장소라는 생각입니다. 여기에 왕릉과 소나무의 조합은 많은 영감을 주는데, 개인적으로 아침 안개가 자욱한 왕릉의 모습은 일반 도심에서는 느낄 수 없는 몽환적인 느낌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경주 효소왕릉과 성덕왕릉으로 가는 길, 마치 고개를 숙인 것 같은 소나무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효소왕릉, 나무 사이로 보이는 왕릉의 모습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왕릉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들 중 신라 왕릉이 있는데요. 현재 경주에는 36기의 신라 왕릉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오늘 소개해드릴 경주 효소왕릉과 성덕왕릉 역시 주변으로 소나무가 담을 치듯 둘러싸고 있어, 왕릉과 소나무의 조합을 느껴볼 수 있는 곳입니다. 한번 다녀오면 아시겠지만, 왕릉에 소나무가 빠지면 왠지 앙꼬 빠진 찐빵이라는 느낌이 드는데요. 이러한 느낌과 별개로 특히 성덕왕릉의 경우 신라 왕릉의 변화 과정에 있어서도 매우 의미가 있는 장소여서 주목해서 보면 좋은 현장입니다.



 철길을 지나 만난 고개 숙인 소나무, 경주 효소왕릉과 성덕왕릉으로 가는 길



경주 효소왕릉과 성덕왕릉은 경주에서 불국사로 향하는 길에 위치하고 있는데요. 위치를 보면 알겠지만, 해당 장소로 가기 위해서는 철길을 건너야 합니다. 예전에 소개해드린 적이 있는 흥덕왕릉이나 대릉원과 달리 편의시설이 좋은 편은 아닙니다. 주차의 경우 지금은 운영하지 않는 광고영상박물관의 주차장을 이용하시면 되고, 주차장을 출발해 철길을 지나면 되는데요. 도보로 약 5분 정도 소요 됩니다. 철길을 지나면 가장 먼저 소나무가 눈에 들어오는데요. 그 모습이 마치 다가서는 저에게 고개를 숙이고 인사하는 것 같습니다. 




측면에서 바라본 효소왕릉의 모습



그렇게 고개 숙인 나무를 지나면 가장 먼저 효소왕릉을 만날 수 있는데요. 효소왕(재위 692~702)은 신문왕의 아들로, 10년 간 왕위에 있었습니다. 다만 너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다 보니, 세상을 떠날 때의 나이가 16세에 불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후사를 남기지 못했고, 결국 다음 왕위는 동생인 흥광이 왕위를 잇게 되는데요, 이가 바로 성덕왕입니다. 즉 효소왕과 성덕왕은 형제였던 셈입니다. 한편 효소왕릉의 외형적인 형태는 원형봉토분으로, 가운데 상석이 자리하고 있는데요. 왕릉의 주변으로 마치 돌이 박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효소왕릉의 상석

봉분 주변으로 튀어나온 돌, 호석의 흔적으로 봉토가 흘러내려 흔적만 남기고 있다.




이는 왕릉의 하단에 호석이 자리하고 있고, 시간이 지나 흙이 봉토분의 흙이 내려오면서 돌의 끝 부분이 드러난 것이라 할 수 있는데요. 돌아서 나오다 다시 뒤를 돌아보니 소나무와 함께 왠지 쓸쓸하게 보이는 효소왕릉의 모습은 효소왕의 생애를 잘 표현해주는 것이 아닌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 효소왕릉을 지나면 소나무 숲과 함께 논 방향으로 거북이 모양이 석물이 눈에 띄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까이에서 보면 비석의 귀부로, 예전 성덕왕릉 앞에 세워진 비석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귀부에서 바라보면 성덕왕릉을 중심으로 소나무 숲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신라 왕릉에서 최초로 석물이 배치된 성덕왕릉



소나무 숲에 둘러싸인 성덕왕릉은 여러모로 주목해서 봐야 할 신라 왕릉 중 하나인데요. 왕릉의 변화 과정에 있어 과도기적 성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선 앞선 효소왕릉과 달리 발전된 양상이 뚜렷하게 드러나는데요. 특히 주목되는 것 중 석물이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이전 시대의 왕릉과 달리 관검석인상과 석사자상이 세워지는데, 동 시대의 당나라 황제의 능에서도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즉 신라와 당 사이의 문화적 교류가 활발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효소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성덕왕(재위 702~737)의 시대는 신라의 번영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데요. 외교와 국방, 내치 등이 모두 안정된 태평성대의 시대였습니다.




효소왕릉을 지나 성덕왕릉으로 가는 길

성덕왕릉의 귀부, 뒤로 소나무 숲과 함께 성덕왕릉이 자리하고 있다.

성덕왕릉으로 가는 길, 입구에 일제강점기 당시 총독부에서 세운 고적비가 자리하고  있다.

고개를 숙인 소나무와 성덕왕릉




한편 성덕왕릉의 봉분에서는 신라 왕릉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십이지신상이 배치가 되는데요. 예전에 소개해드린 흥덕왕릉의 경우 탱석이 십이지신상이 새겨진 형태인데 비해 성덕왕릉의 경우 별도의 조각상 형태라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이처럼 성덕왕릉은 앞선 시기의 왕릉에 비해 외형적인 형태 변화가 뚜렷한 것을 볼 수 있으며, 효소왕릉과 성덕왕릉과 더불어 주목해서 볼 곳 중 사찰이 있습니다. “아니 왕릉에 왠 사찰?”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삼국사기>에는 성덕왕릉이 “이거사 남쪽”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어, 성덕왕릉의 위치를 알려주는 이정표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전면에서 바라본 성덕왕릉의 모습

좌우에 배치된 관검석인상과 석사자상의 모습, 신라 왕릉에 있어 처음으로 석물이 배치되기 시작했다.

또 하나 주목해볼 십이지신상, 조각상 형태로 봉분의 둘레에 세워져 있다.




현재 성덕왕릉의 북쪽, 경주시 도지동에 자리한 이거사지는 폐사지로, 석탑의 흔적만 간신히 남아 있습니다. 또한 “효소왕릉”의 경우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모두 “망덕사 동쪽”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망덕사는 사천왕사지 아래에 위치하고 있어, 일부에서 효소왕릉은 잘못된 비정이라 보는 견해가 있어 왔습니다. 이렇게 보면 효소왕릉과 성덕왕릉이라는 장소에 남겨진 역사의 흔적은 작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러다 소나무를 바라보니 문득 이러한 역사의 현장을 지켜온 산 증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각상의 형태로 세워진 십이지신상 중 닭의 형태다.

성덕왕릉과 이거사지, <삼국사기>에는 “이거사 남쪽”에 성덕왕릉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단순히 이러한 왕릉의 외형적인 모습을 보는 것도 좋지만, 해당 공간 혹은 장소에 담긴 역사의 흔적을 함께 보시면 더 좋은데요. 혹 경주를 다녀가실 기회가 있으시다면 숨겨진 보물과도 같은 장소인 경주 효소왕릉과 성덕왕릉을 한번 주목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 경주 효소왕릉과 성덕왕릉


주소 : 경상북도 경주시 조양동 산8

입장료 : 무료

편의시설 : 별도의 주차장과 화장실 없음 

비고 : 주차장은 인근의 광고영상박물관 주차장을 이용, 주차한 뒤 이정표를 따라 철길을 건넌 뒤 5분 정도 도보로 이동   

        




※ 본 기사는 산림청 전문필진 김희태 기자님 글입니다. 콘텐츠의 무단 복제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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