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 들머리에 자리한 시원한 인공폭포
초여름 이맘땐 오후 느지막이 집을 나서 동네 뒷산인 안산(295m, 서울 서대문구)에 가곤 한다. 산책 같은 산행을 할 수 있는 이름만큼 편안한 산(安山)이다. 조선시대엔 무악(毋岳), 안현(안장 鞍, 고개 峴)이라고도 불렸다. 산의 모양이 마치 말의 안장 즉 길마와 같이 생겨 '길마재'란 옛 우리말 이름도 있다.
큰 바위와 가파른 절벽이 있어 암벽타기를 하며 산을 오르내릴 수 있고, 무장애숲길이라 하여 유모차 혹은 휠체어를 탄 사람도 산행을 할 수 있는 숲길이 마련돼 있다. 살아있는 화석이라 불리는 메타세쿼이아 나무숲을 조성해 놓아 한여름에도 상쾌하다. 완만한 나무데크 산책로를 따라 산속을 거닐 수 있는 ‘안산 자락길’도 있다.
안산의 랜드마크는 보기만 해도 시원한 인공폭포다. 높다란 절벽에 물이 콸콸 쏟아져 내리는 큰 인공폭포가 산 들머리에 자리하고 있어 산행의 즐거움을 더한다. 커다란 물소리와 함께 쏟아지는 폭포수를 보기만 해도 무더운 날씨를 잠시 잊게 된다. 안산의 두 번째 상징은 산 꼭대기에서 만나는 봉수대다. 안산 봉수대는 1994년 서울 정도 6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서울시에서 복원하였다.
봉수대는 조선시대 때 연기나 불을 피우는 방식의 통신수단 체계다. 조선시대 당시 1~5 봉수대가 있었는데 안산 봉수대는 '평안도 강계 - 황해도 - 한성 무악'의 제 3 봉수대였다. 높지 않은 동네 뒷산이지만 전망은 높은 산 못지않다. 청와대를 품은 북악산, 큰 바위들이 인상적인 인왕산이 눈앞에 펼쳐진다.
한여름에도 시원한 메타세쿼이아 나무 숲
산을 향긋하게 해주는 아까시 나무
안산을 지탱해 주는 아까시나무
이맘때 안산은 산들바람에 실려 풍겨오는 향긋한 꽃 냄새에 이끌려 자주 가게 되는 산이다. 이 향기의 주인공은 흔히 아카시아꽃라고 잘못 알려진 아까시꽃. 안산엔 초봄에 많은 시민들을 찾아오게 하는 화사한 벚꽃이 피는 산벚나무가 유명하지만, 이 산을 지탱하게 해주는 것은 흔히 아카시아 나무라고 부르는 아까시나무다.
안산은 본래 모래흙과 바위로 된 척박한 토질의 산이었다. 이 산을 비옥하게 해준 일등공신이 바로 아까시나무다. 이맘때 동네 뒷산에 가면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매달린 아까시나무 꽃에서 나는 달콤하고 향긋한 꽃향기에 취해 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나무다. 안산 중턱에 오를 즈음 아까시나무 꽃향기가 마치 향연처럼 온 산에 가득 펼쳐졌다.
아까시나무가 흔히 아카시아꽃, 아카시아나무로 잘못 알려진 건 TV의 껌 광고와 국민동요 <과수원길>의 영향이 컸다.
동구 밖 과수원길 아카시아꽃이 활짝 폈네 ♪
아카시아꽃 하얗게 핀 먼 옛날의 과수원길 ♪
아까시나무는 영어 이름도 'False Acasia'로 아카시아가 아니라는 뜻이다. 아카시아 나무는 열대지방에 사는 상록수로 우리나라 기후에선 살지 못한다.
황폐했던 한반도의 산을 비옥하게 해준 아까시나무
아까시나무는 일제 강점기인 1911년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귀화식물로 미국 등 동북 아메리카가 원산지다. 목재가 단단해 철도 침목용으로 사용하거나 공원 조성용으로 들여왔다고 한다.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이 땅의 산과 숲은 더욱 황폐해졌고, 1960년대 국가 주도하에 전국적인 조림사업이 시행됐다. 이때 심어진 대표적인 수종이 아까시나무, 오리나무, 리기다소나무다. 모두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나무들이다.
아까시나무는 생장력이 좋아 빨리 자라기도 하고, 번식력과 적응력이 특히 강한 나무다. 게다가 줄기를 잘라도 맹아지가 계속 나와 땔감으로 유용한 가치가 있는 나무라니 당시 토사가 흘러내릴 정도로 황폐했던 우리 산에 아까시나무보다 더 좋은 나무는 없을 듯싶다. 아까시나무는 토양에 양분이 부족하더라도 공기 중 양분(질소)을 흡수한 뒤 뿌리에 저장해 잘 자라는 특이한 식물로 학계에서는 '질소 고정식물'이라고 별명이 있을 정도라고.
민둥산을 비옥하고 풍요롭게 해준 일등공신 나무인데다 꿀까지 풍성하게 나는 고마운 밀원식물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꿀 생산량의 70%나 책임지고 있단다. 어르신들 가운데는 단맛이 풍부한 아까시나무 꽃을 따먹던 시절을 회상하는 분들이 많다.
향긋한 아까시 꽃 융단이 깔린 안산 길
잘못된 이름에 오해와 편견까지 입은 나무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우리나라 산을 망치기 위해 심었다는 오해에다, 1년에 3m씩 자라는 엄청난 성장속도와 땅속뿌리의 끈질긴 번식력 탓에 아까시나무는 억울한 푸대접을 받기도 했다. 8,90년대 아까시 나무가 자라 산의 주종을 이루자, 뿌리가 길고 억세서 다른 나무를 못 자라게 한다느니 조상의 관을 뚫고 들어간다는 등 아까시나무는 저만 살고자 하는 나쁜 나무, 유해수종이라는 편견과 오해가 퍼졌다.
참고로. 아까시나무 뿌리는 심근성이 아니라, 뿌리가 옆으로 뻗는 천근성이어서 땅을 깊이 파고 들어가 관을 뚫는 일은 없다. 그런 속성 덕택에 산사태를 방지하고 지반을 튼튼하게 해준다. 결국 조림 중단, 땔감용 벌채 등을 벌어지다 급기야 미군이 베트남 전쟁 때 밀림을 없애기 위해 살포했다는 고엽제를 써서 아까시나무를 죽여야 한다는 흉흉한 말까지 통용됐다.
벌목 1순위였던 아까시나무는 2000년대 들어서야 여러 효용이 알려지면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산림청은 작년부터 2018년까지 전국 국유림 내에 매년 150ha씩 총 450ha 규모로 아까시 나무 조성사업을 하고 있다.
햇볕을 쬐기 위해 산 정상 부근에 모여 사는 아까시나무
아까시나무는 흔히 말하는 생태계 교란종이라 불리는 식물이 아니다. 가장 큰 이유는 아까시 나무가 양지식물이라서다. 햇볕을 좋아해 햇살이 드는 양지가 아니면 살 수 없는 소나무 같은 나무를 양수나무라고 하는데, 아까시나무는 그런 경향이 더 심한 극양수 나무다. 그래서 다른 나무가 숲을 이루어 살고 있는 곳은 침범하지 못한다.
한국전쟁 이후 정부의 주도하에 꾸준히 심고 가꾸었던 나무들이 무럭무럭 자라나 키를 키우면서 아까시 나무는 햇볕을 보기 힘들어졌고 도태되기 시작했다. 자연의 섭리에 따라 사라지고 있는 거다.
동네 뒷산 안산의 경우를 보더라도 메타세쿼이아, 산벚나무, 참나무류 등 성장한 키 큰 나무들에 밀려 아까시나무는 햇볕을 쬘 수 있는 산꼭대기 부근에만 모여 살고 있다. 숲을 풍요롭게 만든 다음 자신은 사라지고 다른 수종에게 자리를 내주는 착하고 고마운 나무. 세상에 나쁜 사람은 많지만, 나쁜 나무는 없다는 말이 맞구나 싶은 나무다.
#내손안의_산림청,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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