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est 소셜 기자단 -/2019년(10기)

능이나 태실로 불이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한 화소 표석과 출입 금지를 알린 금표비 :: 돌에 새겨진 글자, 나무의 역사를 담고 있는 문화재

대한민국 산림청 2019. 10. 23. 17:00



문경새재의 1구간에서 2구간으로 가는 길에 볼 수 있는 산불됴심, 조선시대에도 산불조심을 했다는 점은 이색적이다.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표석(=비석) 중 나무와 직, 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표석들을 볼 수가 있는데요. 대표적으로 앞전에 소개한 바 있는 산불됴심 표석이나 봉산 표석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이외에도 조선시대 능이나 태실 주변에 세워진 표석들을 주목해보시면 좋은데요. 해당 표석들은 크게 화소 표석과 금표비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정확히는 능이나 태실을 보호하고 자연 경관을 지키기 위해 세운 표석으로, 해당 표석들이 지니고 있는 역사적 의미는 작지 않습니다. 분명 흔하게 세워졌던 표석이지만 현재 이러한 표석들은 극히 일부에서 확인되고 있을 뿐,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오늘은 관련 표석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속리산 법주사 경내에 위치한 화소 표석, 순조 태실로 가는 길에 만날 수 있다.

홍성군 구항면 태봉리로 가는 길, 이곳은 과거 순종의 태실이 있던 곳이다.




■ 산불로부터 능이나 태실을 지키기 위해 조성한 화소(火巢)


기본적으로 조선시대에 능이나 태실이 조성될 경우 특정 거리까지는 화소 구간과 금양지로 설정이 되어 자연경관을 지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화소는 기본적으로 능이나 태실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정되는데, 일부 구간을 마치 해자처럼 발화 요인을 태워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불이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한 완충 공간입니다. 실제 <수원부지령등록>을 보면 현륭원(=현 융릉)의 화소 구간을 설정한 것을 볼 수 있고, <건릉지>에서는 4곳의 화소 표석(세람교, 홍범산 들머리, 하남산, 배양치)을 세웠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태실에서도 화소가 설정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요. 앞서 소개한 바 있는 보은 순조 태실의 경우 법주사 경내에 하마비의 뒷면에 화소가 새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순종 태실지의 유일한 흔적, 논둑에 세워진 화소 표석


화소 표석에서 바라본 순종 태실지, 현재 그 흔적을 찾기란 쉽지 않다.




이와 함께 충청남도 홍성군 구항면 태봉리에 위치한 순종 태실지에서도 이러한 화소 표석을 찾을 수 있는데요. 태봉리(胎峯里)라는 지명에서 알 수 있듯 이곳에 태실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순종의 태실은 지난 1930년 관리의 어려움을 이유로 현 서삼릉 경내로 옮겨지게 됩니다. 이후 태실이 있던 태봉산은 민간에 팔린데 이어 산도 헐려 지금은 해당 태실의 흔적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나마 순종 태실지의 유일하게 남은 흔적이 바로 화소 표석으로, 위치는 태봉산의 맞은 편 논둑에 세워져 있습니다. 해당 표석을 보면 앞면에 화소(火巢)가 새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요. 해당 표석의 실물을 통해 다른 능이나 태실에서도 이와 유사한 형태의 화소 표석이 세워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화소 표석은 산불로부터 능과 태실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이었다는 점을 주목해보시면 좋습니다.




영월군 주천면 신일리에 소재한 망산, 입구에 세워진 금표비

금표비의 뒷면, 함풍구년이월일(咸豊九年二月日)이 새겨져 있다.




■ 사람들의 출입을 금지한 금표비, 자연경관을 지키기 위한 경고문의 성격을 가져


이러한 능이나 태실의 경우 또 하나의 비석이 세워지게 되는데요. 바로 금표비(禁標碑)입니다. 금표비는 한자 뜻 그대로 출입을 금지한다는 내용으로, 이는 능이나 태실의 훼손을 막기 위한 조치인 동시에 자연경관을 지키기 위한 조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통의 경우 능이나 태실 등에 출입을 금지하는 금표비가 세워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현재 남아 있는 금표비는 손에 꼽을 정도인데요. 이 가운데 하나를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 신일리에 있는 철종 태실지(=철종 아들 태실지라는 설도 있음)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해당 표석은 크게 앞면에 금표(禁標)가, 뒷면에는 함풍구년이월일(咸豊九年二月日)이 새겨져 있습니다. 




망산에 자리한 철종 태실지, 현재 덮개석만 남아 있다.

영월 청령포에 자리한 금표비, 출입 금지를 통해 자연 경관을 지킬 수 있었다.




함풍은 청나라 황제 문종(=함풍제)의 연호로, 1859년(=철종 10년)에 세워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 금표비 위쪽에는 철종의 태실로 전해지는 태실지가 자리하고 있는데요. 특히 영월의 경우 단종의 유배지로 잘 알려진 청령포에도 금표비가 남아 있어 함께 주목해보시면 좋습니다. 이처럼 산불로부터 능이나 태실을 보호하기 위해 화소 구간을 설정하고, 표석을 세우는가 하면 입구에 금표비를 세워 사람들의 출입을 금지, 자연경관을 지키고자 했던 흔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셨나요? 외형만 보자면 그저 돌덩어리에 새겨진 글자에 불과하지만, 여기에 담긴 의미만큼은 결코 가볍지는 않은데요. 혹여 위와 유사한 비석을 보시게 된다면, 해당 표석이 들려주는 역사의 이야기를 주목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 본 기사는 산림청 전문필진 김희태 기자님 글입니다. 콘텐츠의 무단 복제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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