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est 소셜 기자단 -/2013년(4기)

나는 걷는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대한민국 산림청 2013. 2. 8. 13:41

나는 걷는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산림청 블로그 기자단 김민주

 

 

 

  술을 새 부대에 담기 위해 길을 나선다. 장엄한 해돋이를 볼 만큼의 여유도 없었다. 주눅 든 마음으로 한해를 보내고 준비 없이 새해를 맞았다. 무언가 마디를 지울 필요를 느꼈다. 백 팩에 아이젠과 스패츠를 챙겨 넣었다. 영하의 날씨에 해가 들지 않는 숲 속을 걷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름다움에는 접근 불가능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장미의 가시처럼. 얼음처럼 추운 날씨, 차가운 양 볼을 감싸 쥐며, 끝이 없어 보이는 하얀 도화지 위의 숲길을 걷는다. , 세상을 모두 덮어버린 눈. 세상의 바탕색을 이토록 아름답게 바꿔버리는 위대한 힘. 모든 위대한 것들이 그러하듯, 그 힘에 가까이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릴 때 와본 곳은 언제든 다시 갈 수 있는 곳이다.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 대신, 이미 익숙해진 풍경이 그리워질 때, 세상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치유하고 싶을 때 우리는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다. 세상 속으로 던져지기 전 나를 보호해주던 따스한 손을 기억하며 그 길을 따라 걷는다. 추위에 발이 얼지 않도록, 또 체온이 식지 않게 계속 몸을 움직여야 한다.

 

좁고 하얀 길은 끝도 없이 이어진다. 6.9킬로미터라면 그리 먼 코스가 아니다. 하지만 체감되는 길이는 어느 때보다 길게 느껴진다. 놀멍 쉬멍 걸을 수 있는 여름과는 다르다. 비슷한 풍경이 계속 이어진다. 계곡을 이어주는 작은 다리와 제방, 가끔 나타나는 쉼터와 약수터. 모든 것이 얼어붙은 사방의 산 너머 어렴풋이 해가 있다는 것만 빼면 꼼짝없이 눈 속에 갇힌 것이나 다름없다.

 

그 안에서 소리를 듣는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새들의 소리, 개울물 소리, 나무들이 내는 소리, 무언가 후드득 떨어지는 소리, 바람소리, 바스락 거리는 소리. 운이 좋으면 고라니나 멧돼지의 발자국 소리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왜 왔던가? 꼭 해야 하는 일인가? 게으른 뇌가 자책하는 말들을 수없이 내뱉을 때에도 발은, 다리는 아주 충실하게 제 임무를 다한다. 중간에 내려갈 수 있는 지름길이 네 군데 있지만 계속 걷는다. 두 다리가 하는 가장 정직하고 본질적인 일이 걷는 것이다. 몸이 하는 일에 마음이 그냥 따라가게 내버려둔다.

 

드디어 문명의 소음이 귓가에 닿을 때 안도의 숨과 함께 짜릿한 희열이 솟는다. 결국 4개 구역을 모두 걷고 동물원 정문 쪽으로 내려온다. 그러고서도 반항적인 뇌는 계속 묻는다. 왜? 따뜻하고 온화한 오월을 기다리지 못하고 지금이어야 하는가? 꼭 이렇게 해야 하나? 이국의 설경 같은 숲의 풍경을 보기 위해서도 아니다. 아무 것도 나의 행동을 설명해 줄 수는 없다. 이렇게 해서 나를 찾은 것인가?

 

뭘 얻었을까?

뭘 잃었을까?

 

오랫동안 생각에 잠긴다. 인간의 행동의 밑바닥까지 이성이 설명해 줄 수는 없다. 다만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명확한 사실이 한 가지 있다. 나는 그곳에 있었고, 나는 걸었고, 그리고 지금 그 혹한의 산책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그것처럼 '나는 걷는다. 고로 존재한다.' 아니 '나는 걸었다. 고로 살아있다' 적어도 내가 걸었다는 사실,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분명 이 생을 진실 되게 맞고 있으며, 도피하지 않고 그 안에 발을 담그며 살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새해를 떳떳하게 맞이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명분이 될 수 있을까. 가끔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그 길을 다시 복기한다.

 

 

 
한겨울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날씨에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걷는다. 한반도가 냉동 창고가 되어도 결코 우리를 두렵게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으려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이어진다. 

 

 


눈은 서울대공원 초입의 가로수들에게 하얀 옷을 지어주었다. 순백의 도화지를 배경으로, 아름다운 나뭇잎을 모두 떨어내고 오롯이 앙상한 가지로만 우뚝 선 나무들에게서 의연함과 고고함이 묻어난다.

 

 

 

 

 

 

 

 

걷는다는 것은 위대한 일이다. 교묘한 균형 잡기다. 오른발과 왼발은 서로 조응하면서 결코 혼자서 앞서나가지 않는다. 먼저 한 발이 나아간 자국을 따라 뒷발이 묵묵히 받쳐주어야 온전히 걸을 수 있다. 직립보행은 인류에게 자유를 주었다. 하지만 그 자유는 자만하지 않는 자유다. 인간의 눈높이에서 할 수 있는 일이며 그것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자명한 진리를 은연중에 깨우쳐 준다. 

 

 


초입에 있는 계단은 나지막하면서도 찾는 이의 행보에 알맞게, 너무 넓지도 너무 좁지도 않게 만들어놓았다. 그 길을 걷는 이에게서 실존이 느껴진다. 누군가 이 길을 처음으로 간 사람이 있으리라. 나는 먼저 난 발자국을 쫒으며 먼저 길을 낸 누군가에게 감사한다. 아무리 힘든 길도 누군가는 지나갔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용기를 얻는다.

 

 

 
인간이 만들어 낸 것 중에서 속도와 관련된 것들이 유독 많다. 인간의 발명품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데 쓰여야 할 것이다.

 

 


자연은 언제나 우리에게 무언가를 준다. 우리는 겸손하게, 감사하게 취하면 그것으로 족하다. 

 

 


눈길은 평지를 걸을 때와는 다르다. 추위와 바람,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눈과 씨름한다. 힘들 때는 지나온 발자국을 되돌아본다. 한 걸음의 힘을 믿는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진리가 그 안에 있다.

 

 


겨울나무의 드높은 기상에서 용기를 얻는다.

 

 

 

 

걷는다는 것은 오롯이 나의 두 다리를 가지고서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대신 해줄 수도 없고, 돈으로 살수도 없는 일이다. 차로 달리면서 보지 못하는 것, 자전거를 타면서 보지 못하는 것을 아주 천천히 겸손하게 본다. 누군가는 말한다. 아마도 차가 발명되지 않았다면 인간은 더 겸손해지지 않았을까?, 라고. 

 

 


신동엽님의 '껍데기는 가라' 혁명의 순수한 정신을 그리워하며 껍데기에 대한 거부를 강조한다. 허위와 가식 없는 숲에 어울리는 시다. 거짓된 나를 버리고 정직한 나를 되찾는 법을 배우러 이 숲에 오지 않았던가.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의 자연은 그대로 아름답다. 푸르디푸른 물빛과 하늘빛, 눈빛, 어느 것 하나 훼손되지 않은 색으로 도심에서 오염된 인간의 눈과 귀와 코를 씻어내고 오감을 활짝 열게 한다. 그 자리에 우뚝 서서 자연이 발산하는 경이로움 속에서 스스로 겸손해지며 또 스스로 자연 속에서 아름다운 존재임을 발견할 수 있다.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 수많은 실패들로 주눅 들고 피폐해진 몸과 마음을 오롯이 저 나무들처럼 세울 수 있다.

 

 


 

자연은 그 자체로 충만하여 더 이상 어떤 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빚더미에 앉은 후 울면서 발레 공연을 보았다. 마지막 사치였다. 그런데 갑자기 용기가 솟았다. 예술은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게 하는 힘을 준다. 절망으로 추락할 때조차 자존감을 잃지 않으려는 마지막 보루 같은 것이다. 자연의 예술은 인간의 예술보다 고요하고 웅대하고 담박하다. 그것을 만나러 오는 지도 모른다.

 

 


 

어느새 산림욕장을 한 바퀴 돌고 내려오자 멀리서 노을이 지기 시작한다. 겨울에는 해가 떨어지고 나면 이내 밤이 내린다. 그 밤, 산은 오롯이 자연 속으로 돌아간다. 인간의 발자국을 밀어내고 자연 본연의 숨을 고르며 다시 내일을 준비할 것이다. 우리가 새해를 준비하듯이.

 

 


서울대공원 산림욕장 지도

 

과천 쪽 청계산 중턱, 4부 능선쯤에 길을 내 타원형 공원 주변을 한 바퀴 도는 삼림욕장으로 정문으로 들어와 오른쪽에서 시작해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면 된다.

(가)구간 호주관 뒤쪽 → 남미관 샛길까지 2.2Km로 60분 소요되며, 선녀못이 있는 숲, 아까시나무 숲, 자연과 함께하는 숲, 얼음골 숲, 못골산막, 송촌산막이 있다.
(나)구간 남미관 샛길 → 저수지 샛길까지 1.7Km로 50분 소요되며, 생각하는 숲, 쉬어가는 숲, 원앙이 숲, 얼음골 산막, 청계산막이 있다
(다)구간 저수지 샛길 → 맹수사 샛길까지 1.4Km로 30분 소요되며, 독서하는 숲, 밤나무 숲, 망경산막, 밤골산막이 있다.
(라)구간 맹수사 샛길 → 산림전시관까지 1.6Km로 35분 소요되며, 사귐의 숲, 소나무 숲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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