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부터 경주낭산은 서라벌의 진산으로 불리며 신성스러운 산으로 북으로 길게 누에고치처럼 누워있는 100여미터높이의 부드러운 능선을 가지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어 있는 예사롭지 않은 능산은 신유림이라고 하여 신성시 하던 곳이다.
경주의 다른 왕릉들이 평지에 많이 있는편인데 경주낭산은 100여미터 높이가 말해주듯 마치 동네 뒷산 오르듯 편안한 숲길이다. 일몰의 빛이 촘촘히 나무사이를 채우는 시간, 사각거리는 발걸음 소리뿐 도심의 펄떡거리는 소리는 전혀 들리지않는 선덕여왕릉 가는 숲길이다. 이 길은 걷기 좋은길, 생각하기 좋은길, 사랑이 있는 길이다.
시간대가 맞지 않을때는 대체로 일몰 시간에 맞춰서 여행지를 찾을 때가 많다. 특히 숲속은 다양한 표정으로 풍부한 빛을 담고 있어 특별한 풍경을 담을 수 있다. 선덕여왕릉도 일몰 시간에 맞춰서 찾았는데 역시, 예상보다 더 깊숙히 햇살을 담고 있다. 송림은 서로가 서로를 비켜 양보하며 유연하게 자라 천년을 공존하고 있다. 어느새 일몰의 빛은 사진을 타고 흐른다.
내가 일몰시간대 맞춰서 선덕여왕을 찾는 이유중에 하나는 마치 호위무사를 연상시키는 수백그루의 소나무가 있는 숲을 보기 위함이다. 경주 삼릉숲이 많은 사진작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이곳 송림숲 역시 천년세월을 무던하게 지키고 있다.
그 호위병 송림은 해가 떨어져도 오롯한 마음을 담은듯 왕릉에 그림자를 만들어 포근히 감싸고 있다. 괜시리 애뜻한 느낌도 들고 묘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왕릉에는 왜 소나무가 심어져있을까?
우리조상들은 소나무를 베어 집을 지었으며 소나무의 낙엽인 솔잎을 긁어서 온돌에 불을 지피고 밥을 해 먹었다. 그만큼 소나무는 우리 곁에서 뗄래야 뗄수없는 나무로 죽어서까지 이어진다. 예로부터 무덤주변에는 "도래솔" 이라고 "도래"는 둥근물건의 주위나 둘레를 뜻하는데 죽은 자의 영혼에 벗이 되어 영혼이 도래솔을 타고 하늘에 오른다는 뜻을 담고 있다. 또 저승간 사람이 이승의 후손걱정때문에 저승으로 못깔까봐 이승을 보이지 않도록 가리기 위함이라는 구전도 있다.
못생기고 비틀어졌기에 천년시간을 지킬수있었던 안강형소나무
신령이 내려와 살았다는 송림숲은 안강형소나무라고 한다. 안강형 소나무는 경주 주변의 소나무로 다른 지역에 비해 키가 작고 휘어지고 못생긴 소나무를 지역명을 따서 부른것이다. 소나무로 잘생긴 소나무는 다른 용도로 다 잘려서 사용되지만 못생겼기에 천년세월을 견디며 오늘날까지 이어지지 않았을까? 가장 한국적이며 생동감 넘치는 소나무이다.
선덕여왕은 신라 56명 왕 중 54년간 가장 오래 집권한 진평왕과 마야부인 사이 태어났다. 신라 27대 (632-647) 왕으로 본명 알게 되는게 쉽지않은 일인데 드라마를 통하여 잘 알게된 "덕만"이다. 재위16년동안 첨성대, 분황사등을 세워 신라 천년의 아름다운 문화가 만개하였으며 그의 조카인 태종무열왕이 된 김춘추, 김유신과 함께 신라 삼국통일의 기초를 닦았다.
선덕여왕릉은 밑둘레 74m, 높이 6.8m, 지름 24m 로 겉모양이 둥글며 2-3단의 자연석 석축위에 다른 표식의물이 없이 소박하게 자리잡고 있다. 전면에 있는 상석역시 후대에 설치한 것이다.
낭산은 선덕여왕이 자신이 죽으면 도리천에 묻으라는 유언을 남기며 이곳을 지목하였다. 여왕이 죽은후 문무왕때 왕릉아래 사천왕사를 짓게 됨으로 여왕의 예지력을 깨달았다. 또한 이곳 낭산을 불교에서 말하는 수미산으로 여겨 불국토사상의 일면을 보여주어 불교적 우주관과 일치하기도 한다. 산자락에는 거문고의 명인 백결 선새과 최치원선생이 공부하던 독서당이 있다.
선덕여왕릉숲 경상북도 경주시 보문동 산79-2
가는 길
버스(일반 11,604/ 좌석 600, 601, 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