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est 소셜 기자단 -/2013년(4기)

핏빛 그리움으로 피어난 꽃무릇

대한민국 산림청 2013. 10. 14. 10:23

핏빛 그리움으로 피어난 꽃무릇

 

 

산림청 블로그 주부 기자단 김민주

 


 프랑스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사랑은 시간을 가게 만들고, 시간은 사랑을 가게 만든다

 

동화 속처럼 '왕자와 공주는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라는 해피앤딩의 러브스토리는 현실에서 보기 드물다. 동화 속 왕자와 공주는 그 후에 어떻게 살았을까?

 

사랑은 이벤트처럼 격렬하게 다가오지만 생활은 '사랑'을 평범하게 하고 탈색시키는 고약한 마녀가 사는 곳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기를 쓰고 짝을 찾는다.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 영원한 가능성만 제 안에 간직함으로써 이별의 아픔을 그리움으로 승화시키기도 하는 꽃이 평범해 보이지 않는다.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을 담은 꽃에는 아네모네, 노란튤립, 수선화, 구름체, 백목련, 상사화, 꽃무릇 등이 있다. 그 중에서도 가을이 되면 사람들의 발길을 잡는, 핏빛 봉우리로 피어난 화사한 꽃무릇이 있다. 잎이 지고 나서 꽃이 피는 식물로 꽃과 잎이 서로 만나지 못해 늘 그리워 한다는 식물. 그래서 이름도 상사화(相思花)라고 잘못알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상사화는 엄연히 다른 식물이다.

 

 


이 분홍 꽃이 백합목 수선화과의 여러해살이풀인 상사화다. 상사화는 보통 7~8월경에 꽃무릇 보다 조금 일찍 피고 주로 연분홍색이다. 꽃무릇과는 달리 초봄에 잎이 먼저 자라서 지고 난 뒤에 한여름에 꽃이 핀다. 상사화가 질 무렵이 되어야 꽃무릇이 핀다. 꽃과 잎이 서로 만나지 못하는 특징이 비슷하다보니 이름을 혼용하게 쓰는 경우가 많다.

 

 

 

꽃무릇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라는 꽃말은 스님을 연모하던 속세의 여인이 맺어질 수 없는 사랑에 시름시름 앓다 죽은 자리에 이 꽃이 피었다는 데서 유래됐다고 한다. 붉은 속눈썹같이 긴 꽃술에 붉은 꽃잎은 초록의 숲에서 농염한 여인네의 한이 뿜어낸 빛처럼 보인다.

 

 


 
이름의 유래는 무리지어 핀다고 하여, '꽃의 무리' 라는 뜻이라고 한다. 중국이름이 석산(石돌석蒜마늘산)인데 이것은 '돌 틈에서 나온 마늘 모양의 뿌리'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피안화(彼岸花, 히간바나)라고 한다. 가을에 '피안'이라는 불교행사가 있는데,  그 행사를 할 즈음에 피는 꽃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다.

 

 


꽃무릇은 절집의 금어(金魚·그림 그리는 승려)들이 탱화를 그릴 때 꼭 필요한 재료다. 그래서인지 절에서 탱화 등에 방부제로 쓰려고 도입했다고 알려져 있다. 꽃무릇 알뿌리엔 알카로이드 성분이 있다. 이 뿌리를 빻아 물감에 섞어 탱화를 그리면 방부 효과가 뛰어나다고 한다. 절 주위에 많이 심는 연유도 그러하다. 

 

 


고창 선운사, 영광 불갑사, 함평 용천사가 우리나라의 3대 꽃무릇 군락지이다. 9월 추석 무렵이 되면 새벽부터 출사 나온 사람들이 이슬 머금은 꽃무릇을 찍기 위해 몰려든다.

 

 


전라남도 함평군 해보면에 위치한 용천사.

 

삼국시대 인도에서 건너와 불교를 처음으로 전파한 마라난타에 의하여 만들어진 절이라고 한다. 고려와 조선에 이르면서 건물이 30여 채에 이르는 큰 규모의 사찰이었다가 여러 번의 전쟁으로 석등과 돌계단 등의 흔적만이 옛 모습으로 남아 있다.

 

 


용천사는 작은 사찰이지만 9월이면 꽃무릇 축제가 열려 사람들로 붐빈다. 절 주변이 온통 꽃무릇으로 붉게 물들어 장관을 이룬다.

 

 

 

꽃무릇의 붉은 색과 초록의 풀, 그리고 용천사의 단청이 매우 잘 어울린다.

 

 


붉은 꽃이 지고 꽃대까지 지고 나야 잎이 난다. 그래서 이런 화엽불상견(花葉不相見)은 예로부터 일반 가정에서는 심지 않고 절 근처에 많이 심었다고 한다. 
 

 


용천사 앞의 꽃무릇 공원

 

 


호수 둘레에 꽃무릇을 심어 붉은 반영을 이룬 아름다운 호수를 볼 수 있다.

 

 


파릇하게 겨울을 난 꽃무릇의 잎은 초여름 모두 말라 죽는다. 그리고 그 죽은 자리에, 다시 한 가닥의 꽃대가 올라온다.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 하면 안타깝게도 노란조끼를 입고 권총 자살한 소설 속의 '젊은 베르테르'가 생각난다. 서로 만날 수도 없는 꽃과 잎을 가진 꽃무릇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타까운 상사(相思)의 헛삽질을 해마다 반복한다.

 
이 가을, 꽃무릇을 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를 다시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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