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청 블로그 전문필진 기자단 이진형
설마 지금까지 단풍이 남아있는 곳이 있겠어? 그런 짐작으로 큰 기대를 안 하고 시작했던 산책이었는데 서울에서도 아직 풍부하게 단풍이 남아있어 사람들의 마음을 그 자리에서 쉽게 떠날 수 없게 만드는 장소가 있었습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주말까지 사진처럼 그 매력을 간직하고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라고 있었지만 요 며칠 건너뛰듯 내리는 비 때문에 공유하고 싶었던 숲길의 매력도 많이 떨어졌을 겁니다.
이제 모두 세월따라 흔적도 없이 변하였지만, 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 노랫말을 기억하기에 가끔씩 덕수궁 주변을 여유 있게 걸을 때면 흥얼거리던 콧노래를 번에도 어김없이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이유는 예상을 했지만 궁 내부에 들어서니 거리에 쌓인 낙엽만큼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서죠. 겨울내 얼어버릴 땅에서 땅 속의 뿌리로 수분 공급의 한계를 알고 있기에 가지고 있던 풍부했던 나뭇잎을 스스로 내려놓기를 합니다. 결과는 이렇게 초라하지만 그렇게 내려놓기를 하지 않는다면 나무는 결코 내년 봄을 맞이할 수가 없습니다
길을 안내하는 나무 재질의 안내도도 숲과 어울리지만, 가끔은 단색으로 도색을 마감한 금속의 재질도 나쁘지 않습니다.어느 궁에서나 비슷한 크기와 형태, 알리는 서체의 선택도 통일되어 있어서 오직 정보를 알리는 기능에 부족함이 없어 좋았습니다. 1910년 당시 궁역의 크기를 하늘색 영역으로 알리고 있었는데 일부는 세종대로와 서울광장의 일부까지 포함하여 지금보다 훨씬 넓었음을 알리고 있었습니다. 후반부에 보여드리는 단풍길 위치를 알리기 위해 사진에 눈에 띄게 표시(연두색 선)를 했으니 참고하세요.
발걸음은 함녕전과 덕홍전이 있는 방향으로 이어집니다. 고종이 거처했던 함녕전 뒤편에는 정원과 정관헌이 있었습니다. 정관헌은 궁에서 보기 어려운 독특한 건축물인데 러시아 건축가가 설계하여 동쪽, 서쪽, 남쪽에 지붕을 씌운 베란다를 마련하고 내부에는 마주 보며 앉을 수 있도록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었습니다. 아관파천 당시에 처음으로 커피를 접했던 고종이 연회를 열거나, 커피를 마실 때 이용했던 장소였습니다.
정관헌 출입문을 통과하여 석조전 뒤뜰과 이어지는 덕수궁 내부 산책로를 사진에 담았습니다.
기대 이상의 풍경 때문에 특히 중국인 관광객들이 이 주변에서 사진을 많이 찍고 있었습니다. 초겨울 포근한 오후 날씨 덕에 갤러리의 미술작품을 감상하듯 천천히 걸으면서 울긋불긋 단풍들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단풍터널을 통과하듯 산책을 계속하고 있었는데요. 덕수궁 내부에 남아있는 나무의 대다수는 1904년 큰 화재 이후에 심어진 것이지만, 200년 이상의 노거수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후원길을 따라 걷다가 큼직한 회화나무를 만나면 지금까지 그랬듯 오래오래 남아 있으라고 짧은 인사 전해주세요. 근대 역사가 시작된 중요 무대가 되다 보니 고종에게 선물로 전달되어 심어진 마로니에 나무도 그 나이를 알고 보면 100년이 넘었습니다.
산책의 시간이 밤으로 이어지면 어두움 때문에 차갑거나, 초라할 것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그런 어둠의 부정적인 단점을 지우듯 어둠을 밝히는 조명은 시각적으로 따뜻함을 전하고, 빛으로 식물들의 또렷한 윤곽을 바라보게 되니어릴 적 만화경을 보고 있는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발걸음에 바스락거리며 부서질 수 있겠지만 따뜻한 조명 앞에 모여든 마른 단풍만큼은 직접 밟고 지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셀카로 남기기에 어려움이 있었는지 누군가 나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사진 한 장 찍어주시겠어요?"
스마트폰을 전달받고 가장 좋은 장소를 선택해서 조심스러운 터치로 좋은 추억을 남겨드렸습니다.
웃으며 참 좋아하셨는데 그 좋았던 기분을 직접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것 같아요.
아~ 따뜻해진다. 이 기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마지막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에는 이곳 덕수궁 입장도 무료가 되겠고요, 아울러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도 무료 또는 할인 혜택이 제공되는데 이번 전시는 할인만 가능했습니다. 공통점으로 얻게 되는 혜택이라면 어느 장소가 되었든 문화가 있는 날엔 도심의 숲을 만나고, 숲에서 넉넉하게 산책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도심에 있어 사진을 찍을 때면 주변에 있는 높은 빌딩이 등장하여 좋은 배경을 연출할 수 없는 단점이 있지만,
빌딩의 커다란 유리로 막혀 지내는 직장인에게는 딱딱하고 건조한 사무실의 단조로움을 잠시 잊게 해주는 유일한 풍경이 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덕수궁 안에 남겨지는 고즈넉한 풍경은 일몰이 시작될 무렵부터 딱 한 시간 동안 이어집니다.
덕수궁은 시민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있지만, 다른 궁궐과 규모를 비교하면 가장 작은 편입니다.
대한문 앞에서의 수문장 교대식을 구경하는 외국인 관람객이 끊임없이 모이고 있으며, 늦은 밤까지 개방하여 계절에 상관없이 흙길을 밟아보며 도심에서 멀어진 듯 고요한 분위기를 느끼기에 충분합니다. 연말을 앞두고 덕수궁 내부의 작은 숲길을 따라 걸어보며 바람같이 지나간 듯 그런 한 해를 정리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나무가 전하듯 새로운 시간과 희망을 맞이하기 위해서 과감하게 내려놓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그런 12월을 보내려고 합니다. 그런 과정에서 아깝게 느껴지고, 마음도 아플 수 있겠지만 그것들은 거름으로 변해 영양분이 되어 새로운 기회를 맞이할 수 있는 힘이 된다는 희망을 가지고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