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다니다 보면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뜻하지 않은 풍경을 만나기도 합니다.
온통 바위 투성이인 설악산은 어쩐지 꽃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6월의 설악산은 어느 산 못잖게 꽃이 많이 피었습니다.
설악산 서북능선의 꽃(대승령 - 귀때기청봉 - 한계령삼거리) 서북능선을 걷는 방법은 여러 코스가 있습니다.
장수대, 남교리, 한계령 세 곳에서 들어갈 수 있는데 그중 남교리에서 시작하는 게 제일 힘듭니다. 걸을 자신이 있는 분들은 한계령에서 시작해서 귀때기청봉을 지나 장수대로 하산해도 좋습니다(혹은 역방향으로).
초보자인 경우 한계령에서 시작해서 귀때기청봉까지만 갔다가 다시 한계령으로 하산해도 좋습니다.
6월이 시작되는 날에 가시면 서북능선 어디에서라도 곱게 핀 철쭉을 만날 수 있습니다.
설악산 서북능선은 국립공원 기준으로 어려운 구간과 매우 어려운 구간이 많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경험이 있는 사람과 같이 가는 게 좋습니다.
특히 귀때기청봉 주변은 너덜 구간이 많아서 주의가 많이 필요합니다.
설악산의 다른 어느 곳보다도 이름값을 톡톡히 하는 구간이기도 합니다.
저희가 시작한 남교리는 하산까지 무려 10시간 이상 걸리는 곳입니다. 힘듦을 충분히 각오했지만 하루 만에 걷기엔 쉽지 않은 코스입니다. 하지만 숙련된 분들은 충분히 걸을 수 있습니다.
남교리에서 시작해 대승령에 가까워오자 흐드러지게 핀 철쭉을 만났습니다.
5월에 여기저기 다시면서 많이 봐왔던 꽃이라 설악산에서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정말 뜻밖이었습니다.
바위가 많은 산으로만 기억되는 곳이라 어쩐지 꽃과 어울리지 않았지만 설악산에도 꽃이 피고 있었습니다.
강원도의 기후와 가까운 바다의 영향인지 이곳의 꽃은 다른 곳보다 진하고 예뻤습니다.
남부 지방의 꽃이 냉해를 입는 동안에도 설악의 철쭉은 꿋꿋하게 버티어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뜻밖의 산에서 뜻밖의 꽃을 만나 뜻밖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해마다 6월 설악산에 와야 할 이유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이맘때 길가에서는 앵초도 많이 만날 수 있습니다. 걸으면서 발 밑을 보면 이름을 알지 못하는 꽃들도 무척 많습니다.
비가 그치자 지나온 길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무것도 못 보고 그냥 가는가 싶었는데 이렇게 근사한 풍경을 만날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저 아래가 우리가 올라온 남교리입니다.
인간의 한 걸음은 무척 작지만 그 걸음이 모이면 아주 먼 길도 갈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습니다.
비가 그친 설악산은 꽃 외에도 많은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구름에 덮인 점봉산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느새 서북능선에서 가장 상징적인 귀때기청봉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저길 올라가는 것도 만만치 않지만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뿌듯했습니다.
서북능선을 지나는 동안 점봉산과 방태산이 보였습니다.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해서 더는 볼 수 없었지만 설악에서 보낸 멋진 시간이었습니다.
참고로 설악산은 입산 시간 지정제가 시행되는 곳이라 산행 전에 반드시 시간을 확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서북능선은 긴 코스에 비해 중간에 대피소나 물을 구할 곳이 없기 때문에 충분한 물과 간식을 챙겨야 합니다.
또한 일기예보가 맞지 않을 수 있으므로 비옷이나 여벌옷 등도 챙겨 다니는 게 좋습니다.
설악산 공룡능선의 꽃(희운각 - 1275봉 - 마등령)
설악산에서 대청봉 다음으로 유명한 곳이 있다면 아마 공룡능선일 겁니다.
당일로 공룡능선을 넘으려면 새벽부터 산행해야 하지만 대피소를 예약하면 이틀에 걸쳐 여유있게 걸을 수 있습니다. 공룡능선을 걷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설악산 가운데 위치한 곳이라 어디서든 접근이 가능합니다.
한계령이나 오색, 백담사를 거쳐 봉정암에서 오면 희운각 대피소에서 머물기 좋습니다.
휘운각 대피소에서 공룡능선으로 가다 보면 제일 먼저 신선대에 도착하게 됩니다. 여기서 바라보는 공룡능선의 모습은 아마 설악산 제일의 풍경일 겁니다. 어느 계절에 와도 이곳의 풍경은 아름답습니다.
바로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천화대 능선 끝에 위치한 범봉입니다.
바위 하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이곳에서 보는 설악산 풍경이 압권이라고 합니다.
저 뒤로 울산바위도 보입니다. 산에 다니다 보면 저절로 봉우리 이름을 알게 되기도 하는데 확실히 아는 만큼 더 보였습니다.
나뭇가지 사이로 범봉과 울산바위가 더 선명하게 보입니다. 설악산에 몇 번 다녀본 사람들은 설악앓이를 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설악은 중독성이 있고 아름다운 산입니다.
틈틈이 만나는 공룡능선의 바위는 어떻게 이곳에 이런 바위들이 생겼을까 궁금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런 바위들이 모여 공룡의 등처럼 보여서 공룡능선이라고 불렀다고 하니 역시나 이름값을 하는 곳이었습니다.
6월엔 공룡능선에 솜다리가 핍니다.
전국에서 이 꽃이 피는 곳은 설악산이 유일하고 그중에서도 공룡능선입니다.
예전에는 많았다고 하는데 이제는 얼마 남지 않아 만나기가 어려운 귀한 꽃이기도 합니다.
설악산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는 솜다리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듯합니다. 그 정도로 산꾼들에게 사랑받는 꽃입니다.
우리가 갔을 땐 운 좋게 솜다리가 피었고 온전한 모습으로 만날 수 있어 기뻤습니다. 매년 이맘때 공룡능선을 찾게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공룡능선 중간쯤에 위치한 1275봉입니다.
서북능선에서 귀때기청봉이 상징이라면 여기서의 상징은 1275봉이 될 듯합니다. 대부분의 봉우리에 이름이 붙어 있는데 이곳만 유독 숫자로 된 이름이라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1275봉은 보는 방향에 따라 모습이 완전히 달라지는데 마등령 쪽으로 보이는 모습이 제일 멋진듯합니다.
1275봉은 상당히 가파른 곳입니다.
이곳에 올라가다 뒤를 돌아보면 좌-대청봉과 우-중청이 뚜렷하게 보입니다.
마등령에 도착하면 사실상 공룡능선이 끝납니다.
여기서 설악동 비선대로 내려가는 방법이 있고 오세암을 거쳐 백담사로 내려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두 군데 모두 급경사이기 때문에 하산길도 만만치 않습니다. 백담사로 내려갈 경우 셔틀버스를 탈 수 있는데 계절마다 운행시간이 다르니 반드시 막차 시간을 확인하는 게 좋습니다. 막차를 놓치면 2시간 동안 7km나 되는 아스팔트 길을 걸어야 합니다.
해마다 설악산을 여러 번 찾았지만 이렇게 꽃을 많이 만난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6월의 설악이 이렇게 아름다웠는지, 그 산의 모습에 다시 한번 반하게 된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