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국의 계절, 제주의 숲
산림청 블로그 전문필진 고영분(거칠부)
잠시라도 제주에 가게 되면 어디 좋은 숲이 없는지 두리번거리게 됩니다. 제주의 숲은 육지와 다른 뭔가 묘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데 요즘 같은 여름이면 더 무르익습니다. 이번에 찾은 제주에선 몽환적인 분위기의 숲과 쨍한 여름의 숲을 모두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게다가 제주에 그토록 많은 산수국이 피는지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사려니 숲>
너무 많은 사람이 찾아서 식상하다고 느끼면서도 매번 사려니 숲을 찾게 됩니다. 제주도 말로 '사려니'는 '신성하다'라는 뜻이 있는데 이번에 만난 숲이 정말 그랬습니다.
우리가 사려니 숲을 찾은 날은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처럼 안개가 자욱한 날이었습니다. 이런 날의 숲은 쨍한 날보다 더 아름답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는데 사려니 숲은 그 이상이었습니다.
사려니 숲을 처음부터 다 걸어도 좋지만(약 10km) 붉은오름 쪽에서 월든 삼거리까지만 다녀와도 좋습니다
(왕복 약 7km/2시간). 이 구간은 아름다운 삼나무 숲이 주를 이루고 있고 지금 같은 여름이면 산수국을 따라 걸을 수 있어 더욱 좋습니다.
숲길 대부분은 평평한 길이라서 아이들과 함께 걸어도 좋습니다. 산책하듯이 천천히 숲의 기운을 느끼며 새소리를 들으며 걸으면 이만한 휴식도 없을 겁니다.
언젠가 이곳을 걸으면서 산수국이 제대로 필 때 와야겠다 싶었는데 정말 그랬습니다. 제주의 붉은 흙 위로 푸른 산수국이 여기가 제주라고 말해주는 듯했습니다.
길섶에 곱게 핀 산수국이 걷는 이의 마음을 저절로 치유해주는 듯했습니다.
산수국은 습기가 많은 제주 같은 곳에서 잘 자란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 제주는 '수국의 계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여기저기서 수국이 많이 피었습니다.
산수국을 더 가까이하니 마치 보석을 보는 듯했습니다. 볼수록 매혹적인, 제주의 산수국입니다.
<돌오름 숲길>
돌오름 숲길은 아주 어렵게 찾아낸 곳입니다. 들머리 찾기가 애매해서 몇 번이나 헤맨 끝에 찾았는데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안덕 쓰레기 매립장'을 찾아가면 되지만 내비게이션에서 잘 검색되지 않아 지도를 보고 찾아가는 게 좋습니다. 산록도로에서 좁은 포장도로가 끝나는 지점에 매립장이 있고 여기서 돌오름 가는 안내도를 만날 수 있습니다. 돌오름만 목적이라면 한라산 둘레길을 따라 반대편에서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적한 숲길을 기대한다면 이곳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첫 번째 갈림길에서 오른쪽 길로 들어서면 본격적으로 삼나무 숲이 시작됩니다. 이곳은 워낙 인적이 드물고 조용한 곳이라 걷는 이의 발자국 소리와 새소리뿐이었습니다.
주말인데도 불구하고 이날 제가 만난 사람은 3팀에 다섯 명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갈림길마다 안내도가 잘 설치되어 있었지만 너무 고요해서 혼자 걷는 분들은 무서울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길을 걷고자 하는 분은 꼭 두 명 이상 같이 걷기를 권합니다.
특히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노루에 놀라서 뒤로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제가 걷는 동안 총 세 마리의 노루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중 한 녀석은 특유의 꿱꿱 소리를 지르며 달아나는 바람에 더 놀랐습니다. 그만큼 이곳은 다른 숲보다 때 묻지 않은 곳입니다.
돌오름 정상에서는 이렇게 한라산이 보였습니다. 임도를 지나 돌오름 가는 길은 조릿대가 얼마나 빡빡하게 들어차는지 길에서도 발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한라산 둘레길 표시와 같이 있어서 길은 뚜렷했습니다.
내려갈 땐 영아리 오름에 가겠다고 좀 멀리 돌아서 갔습니다. 돌아서 가는 길도 삼나무 숲이었는데 혼자 걷기에 정말 아까웠습니다.
나름 제주의 숲을 많이 찾아다녔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근사한 숲이 있었는지 미처 몰랐습니다. 가을이나 겨울쯤 다시 와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임도에서 영아리 오름까지는 약 600m 정도입니다. 오름 정상은 확 트여서 금방 다녀온 돌오름도 보였습니다. 그 뒤로 보이는 높은 봉우리는 한라산입니다.
이곳에도 어김없이 산수국이 피었습니다. 산수국은 제주의 꽃인 듯 정말 많은 곳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보석처럼 아름답기도 했습니다.
지난 계절 동안 수많은 꽃을 만났지만 수국만큼 신비롭지는 않았습니다.
여름의 제주라고 하면 보통 바다를 떠올리는데 숲에서 만난 산수국은 휴식과 치유의 느낌이 강했습니다.
혹시 제주에 가시거든 조용히 숲길을 걸어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치유의 숲>
숲에 대해 찾아보다가 우연히 이곳을 발견했습니다. 이번에 임시 개장한 치유의 숲은 산림청과 서귀포시의 작품이라고 합니다(내년에 정식 개장).
아직은 임시라서 안내 책자나 프로그램 등이 없지만 입구에 안내도가 있어서 참고할 수 있었습니다.
임시 개장이지만 힐링센터까지 가는 임도 곳곳에 쉼팡(쉼터) 등을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많이 걷기 힘든 분은 이런 곳에서 시간을 보내도 좋을 것 같았습니다. 저도 이 의자에 누워봤는데 아래서 바람이 들어와 무척 시원했습니다. 스트레스 많은 분들이 이곳에서 휴식을 취한다면 저절로 치유가 될 듯했습니다.
'치유의 숲'이라는 이름답게 이곳에서도 근사한 숲을 만났습니다. 마치 키 큰 삼나무가 양쪽에서 호위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같은 듯하면서도 다른 게 제주의 숲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몽환적일 때 만나는 숲과 이렇게 쨍한 날 만나는 숲은 무척 달랐습니다. 게다가 이런 삼나무가 있는 풍경은 이곳이 유럽 어디쯤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국적이었습니다.
힐링센터 입구엔 '멘도롱 가든'이라는 곳이 있는데 여러 사람이 쉬기에 좋았습니다.
실제로 몇몇 분들이 숲에 누워서 나무를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주차장에서 여기까지는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라 가족이 함께 천천히 걸어도 좋을 듯했습니다.
저는 여기서 산도록 치유숲길을 따라 시오름까지 가보기로 했습니다. 가는 길까지의 숲은 어디선가 요정이 나올 것처럼 깊으면서도 고요했습니다.
시오름으로 가는 길에서도 한라산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시오름 정상엔 아무 표시가 없어서 모르고 지나치고 말았습니다.
하산할 때는 시오름을 넘어 놀멍 치유숲길과 가베또롱 돌담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여기는 조록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는데 얼핏 보면 동백나무와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이 길 역시 인적이 거의 없는 데다가 숲이 어두워서 혼자 걷기에 조금 으스스했습니다.
게다가 기존 등산로 입구에 '멧돼지 출몰지역'이라는 안내판이 있는 걸 보면 두 명 이상 함께 하는 게 좋을 같습니다.
호근산책로를 따라 내려오다 보면 편백나무 숲을 만나게 됩니다.
여기는 입구에서 멀지 않아서 쉬러 오시는 분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치유의 숲은 임시 개장인데도 불구하고 제법 많은 분들이 찾고 있었습니다.
개장 초기라 아직은 어수선한 면이 없지 않았지만 자리 잡히면 명품 숲으로 거듭날 듯합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복잡한 숲길에 종합안내도 및 현 위치 표시가 거의 되어 있지 않아서 길 찾기가 애매했습니다. 정식 개장 때 이 부분이 개선되면 숲에서 길을 잃을 염려는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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