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est 소셜 기자단 -/2017년(8기)

역사와 이야기가 있는 '야외박물관' 경주남산

대한민국 산림청 2017. 3. 6. 17:00


역사와 이야기가 있는

'야외박물관' 경주남산

 

 

제 8기 산림청블로그기자단 전문필진 박재성

 

 




이번 산행은 용장골에서 시작하여 삼을으로 내려서는, 남산에서 가장 대표적인 코스로 가보았습니다. 용장골은 용장사에서 유래를 하는데, 매월당 김시습이 단종폐위 사건 이후 용장사에 7년간 머물며 경주 남산의 다른 이름인 '금오'에서 비롯된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저술하였다고 합니다.



설잠교


생육신의 한사람이기도 한 김시습은 단종 폐위 사건 이후 불교에 귀의 하는데, 그 때 법명이 바로 '설잠(雪岑)'입니다. 설잠은 눈 덮인 봉우리라는 뜻이며, 그 외에도 그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매월당 및 청한자, 동봉, 벽산청은, 췌세옹 등으로 불렸습니다.



용장사지 삼륜대좌불



흔적만 남은 용장사 터에서 위를 올려다보면 바위 끝에 탑이 하나 보입니다. 바로 용장사지 삼층석탑 입니다. 용장사지에서 위로 잠깐 올라서면 석탑을 대하기 전에 먼저 시선을 잡아끄는 부처님을 만날 수 있는데, 바로 8세기 중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용장사지 삼륜대좌불입니다. 용장사지 삼륜대좌불은 옛 용장사의 주존불로서, 보물 187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불두가 있었으면 국보가 되었을 법도 한데...' 하는 개인적인 아쉬움이 남습니다.



용장사지 3층 석탑 (보물 186호)



삼륜대좌불 옆으로 시야가 탁 트인 조망바위 끄트머리에 3층 석탑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게 바로 신라시대에 조성된 용장사지 3층 석탑입니다. 바위를 기단으로 우뚝선 이 탑은 아래쪽 용장사지나 계곡에서 바라보면 벼랑 끝 하늘에 탑이 서있어 신비감을 더해 줍니다.




경주의 남산은 금오산이라고도 부르며, 통상 남쪽의 고위산과 북쪽의 금오산의 두 산을 합하여 남산이라고 합니다. 남산은 해발 500m가 채 안되는 낮고 작은 산이지만, 아웃도어 박물관이라 불리워도 좋을만큼 천년 신라가 지녀왔던 불국토의 증거들이 온 산 가득히 남아있습니다. 절 터 147곳, 불상 118체, 탑 96기, 석등 22기, 연화대 19점, 그리고 왕릉과 산성지를 비롯해 672점의 유물과 유적지가 있는 산 전체가 자연 그대로의 야외 박물관이라 할 만 합니다.



경주 남산의 유래


옛날 경주의 이름은 '서라벌(徐羅伐)' 또는 '새벌'이라 했습니다. 새벌은 동이 터서 솟아오른 햇님이 가장 먼저 비춰주는 광명에 찬 땅이라는 뜻으로 아침 햇님이 새벌을 비추고 따스한 햇살에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의 변화가 아름답고 온갖 곡식과 열매가 풍성하여 언제나 복된 웃음으로 가득 찬 평화로운 땅입니다.


이에 얽힌 설화도 있습니다. 이 평화로운 땅에 어느 날 두 신이 찾아왔는데, 한 신은 검붉은 얼굴에 강한 근육이 울퉁불퉁한 남신(男神), 다른 한 신은 갸름한 얼굴에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를 가진 아름다운 여신(女神)이었습니다. 이 두 신은 아름다운 새벌을 둘러보고 "이야! 우리가 살 땅은 이곳이구나!"하고 외쳤고, 이 소리는 새벌의 들판을 진동할 정도로 우렁찼습니다. 이 때, 개울가에서 빨래를 하던 처녀가 깜짝 놀라 소리나는 곳을 보았더니 산 같이 큰 두 남녀가 자기 쪽으로 걸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처녀는 겁에 질려 "산 같이 큰 사람 봐라!" 하고 외칠 것을 급한 나머지 "산 봐라!"하고 소리를 지르고는 정신을 잃었습니다. 두 신도 갑자기 발 아래에서 들려오는 외마디 소리에 깜짝 놀라 그 자리에 발걸음을 멈췄는데 왠일인지 다시는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두 신은 그자리에 굳어 움직일 수 없는 산이 되었는데, 소원대로 아름답고 기름진 새벌에서 영원히 살게 되며 남신은 기암괴석이 울퉁불퉁하고 강하게 생긴 남산(南山)이 되었고, 여신은 남산 서쪽에 솟아있는 부드럽고 포근한 망산(望山)이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삼릉계곡의 마애석가여래좌상


멀리서 봐도 거대하고 아름다운 부처님이 바위 벼랑 아래쪽 암벽에 조각되어 있습니다. 국보와 보물을 떠나 멀리서 보기에도 매우 강렬한 카리스마를 풍기는 이 부처님은 통일신라 시대 후기의 불상으로 남산에서는 두 번째로, 냉골(삼릉계)에서는 가장 큰 불상으로 7m의 큰 높이가 남산 북봉인 금오봉을 향해 앉아 있습니다. 이를 보면 다들 입을 모아 감탄성을 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마애석가여래좌상 부처님을 당겨서 보았습니다. 얼마 전까지는 지진으로 인한 보수 공사를 했는데, 그새 공사를 다 마치고 이렇게 깔끔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조금 전 마애석가여래좌상 부처님이 계시던 위쪽 바위 봉우리에 올라 지나왔던 곳을 바라봅니다. 경주 남산의 산세는 크지 않지만, 많은 역사 유물을 가지고 있는 것 외에도 이처럼 곳곳에 바위가 있어 멋진 조망을 제공함으로 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습니다.




신선들이 내려와 바둑을 두고 갔을 정도로 너른 바둑바위에서는 경주 시내를 내려다 볼 수 있습니다. 천년 전 화랑과 낭도들도 이 멋진 조망터에 서서 도읍인 서라벌을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경주 들판 건너 왼쪽 맨 앞으로 경주 남산 유래에 등장하는 가장 작은 산이 여신이 산이 되었다는 망산이 보입니다.



상선암


상선암은 경주 남산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암자로, 원래 신라시대 절터였다고 합니다. 현재의 상선암은 자체로 크게 볼 것은 없지만, 법당 하나와 요사채 하나로 구성되어 있는 그 때의 양식을 볼 수 있습니다.



경주 남산 삼릉계 석조여래좌상


하산길 우측 계곡 위로 작은 부처님이 보이는데, 얼핏 보기에는 일부러 올라갔다 오기엔 그저 그런듯해 보입니다. 그런데 구릉을 올라서 대면한 부처님의 첫 모습은 강렬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일행들이 내려갈 때 홀로라도 올라온 것이 너무도 다행스러울 정도로, 지나치기엔 두고두고 후회할 모습이었습니다.




멀리서 보았을때와는 다르게 이날 산행 코스에서 가장 아름답고 멋진 부처님상이었던 듯 싶은 남산삼릉계 석조여래좌상을 마주했습니다. 보물 666호 답게 아우라를 뿜어내는 그 모습에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합니다.




그새 먼저 내려갔던 일행들은 얼마를 내려서다가 등로 우측 위쪽 바위에 여섯분의 부처님을 그려넣은 삼릉계곡 선각육존불 부처님 앞에 서서 구경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냥 걸어 내려갔으면 한참을 갔을텐데, 남산은 이처럼 예술품들이 많다보니 서둘러 걸어갈 수가 없습니다.



삼릉곡 제2사지 석조여래좌상


조선시대의 억불정책의 일환이거나, 아니면 술취한 못난 사대부의 행패인지, 그것도 아니면 일제시대에 민족정신을 말살하려던 일제의 만행 때문인지 경주 남산에는 유독 머리가 없는 부처님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머리와 두 손이 없는 석조여래좌상 부처님도 계곡에 묻혀있다가 1964년에 발견되어 현재의 큰 바위 위로 옮겨 놓은 것이라고 합니다.




머리와 두 손이 없는 석조여래좌상 부처님을 지나 산쪽으로 좀 더 올라가니 한 눈에 봐도 아름다운 여성미가 눈에 들어오는 삼릉계곡 마애관음보살상이 있습니다. 천년의 세월을 보듬고 있지만 부처님의 아름다움은 여전합니다.




천년의 세월도 지우지 못한 붉은색 작은 입술이 눈에 들어옵니다. 중간에 누가 칠을 한 것일까요? 아니면 천년의 풍상을 거치면서도 여즉 그 색을 지우지 못한 관음보살의 여심일까요...



삼릉


삼릉, 세 무덤의 주인은 신라 8대 아달라왕,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이라 전해집니다. 천년이 넘는 세월을 건너서 세 왕의 무덤과 솔숲을 마주하고 있으려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천년 전 이 작은 산에 가득했을 아름다운 불상들과 많은 사람들, 석공들, 스님들, 불자들의 조용한 미소와 망치질 소리, 호연지기와 풍류를 거론하며 몰려 다녔을 화랑과 낭도들의 호기찬 웃음소리를 떠올려 봅니다. 천년 신라의 진산은 이렇게 또 장구한 세월을 보내며 목이 잘린 불상들과 흔적만 남은 절터를 남겨두고 옛 영화를 무덤 속에 봉인하고 있습니다.




삼릉 주변은 소나무 숲의 성지라고 불리며 전국에서 많은 사진작가들이 몰려든다는 유명한 소나무 숲입니다. 마치 춤을 추듯 자유롭게 뻗어나간 수많은 소나무들. 시간제한을 두고 빨리 걸어야 하는 상황만 아니라면 이 솔숲에서 한참을 머무르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삼릉 솔숲을 빠져 나오면서 산 속에 펼쳐진 야외 박물관 탐방을 마칩니다. 산 자체가 뽐내는 아름다운 풍취나 품광 보다는 남산이 천년의 세월동안 조용히 품고 있는 불교유물의 아름다운 품격이 멀리서도 이 낮은 산을 찾는 전국의 탐방객들에게 충분한 이유와 가치를 전해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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