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산림청/Magazine 숲

<꿈에라도 보이려나 그리운 금강산> 백두대간 두 번째 산줄기 '금강산'

대한민국 산림청 2017. 6. 12. 13:30

<꿈에라도 보이려나 그리운 금강산>
백두대간 두 번째 산줄기 금강산


글. 신정일(문화사학자)





 옛사람들은 우리나라 2대(二大) 명산(名山)을 백두산과 금강산으로 보았다. 그래서 백두산을 두고 산의 성자(聖子)라고 했고 금강산을 일컬어 산의 재자(才子)라고 했다. 즉, 성스러운 산의 으뜸은 ‘백두산’이고 기이한 산의 으뜸은 ‘금강산’이다. 


 너 나 할 것없이 가고자 열망했던 금강산

『신증동국여지승람』 「회양도호부」 ‘산천’조에는 금강산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금강산, 장양현의 동쪽 30리에 있다. 부와의 거리는 167리다. 산 이름이 다섯인데 첫째 금강(金剛), 둘째 개골(皆骨), 셋째 열반(涅槃), 넷째 풍악(楓嶽), 다섯째 기달(怾怛)이니 백두산의 남쪽 가지다.(중략…) 산은 무릇 일만 이천 봉이니, 바위가 우뚝하게 뼈처럼 서서 동쪽으로 창해를 굽어보며 삼나무와 전나무가 하늘을 찌를 듯하여 바라보면 그림과 같다. 일출봉, 월출봉 두 봉우리가 있어서 해와 달이 뜨는 것을 볼 수 있다. 안쪽 산과 바깥 산에 모두 108곳의 절이 있는데 표훈사, 정양사, 장안사, 마하연, 보덕굴, 유점사가 가장 이름난 사찰이라고 한다.’


금강산에 대한 흥미로운 글이 <조선왕조실록>에 실려있다. 「태종실록」 태종4년 9월 ‘기미’ 조를 보면 왕이 하륜, 이거이, 성석린, 이무, 이서 등과 정사를 의논하다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중국 사신들이 조선에 오기만 하면 꼭 금강산을 보려고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재상 하륜이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일찍이 송나라 시인이 노래하기를 원컨대 고려국에 태어나 한 번만이라도 금강산을 보았으면 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중국 사람들조차 답사하기를 원했던 금강산. 서울에서 불과수백 리밖에 안 되는 금강산을 답사한 우리나라 사람도 불과 얼마되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신기재(申企齋)라는 사람은 ‘젊을 때는 병이 많고 지금은 늙었으니 인생 백 년 동안 금강산 한 번 못 보았네.’ 라고 시를 지었다. 그렇게 남자들도 가기 힘든 금강산을 답사한 여인이 있었다. 개성 기생 황진이다.


진이는 금강산이 천하 명산(名山)이라는 말을 듣고 한 번 맑은 흥취의 놀이를 마련하고자 했는데, 함께 할 사람이 없었다. 당시에 이생원(李生員)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사람됨이 호탕하고 소탈해서 명승지 유람을 함께 할 만 했다. 진이가 이생에게 조용히 말했다.


“저는 중국 사람도 ‘고려 국에 태어나서 금강산을 한 번 보기를 원한다’고 들었습니다. 하물며 우리나라 사람으로 본국에서 태어나 자라서 선산을 지척에 두고 진면목을 보지 못한대서야 되겠습니까?지금 제가 우연히 선랑(仙郞)을 받들었으니, 바로 신선놀음을 함께 하기에 좋습니다. 빼어난 경치를 마음대로 찾아보고 돌아오면 또한 즐겁지 않겠습니까?”


이에 이생으로 하여금 하인을 따라오지 못하게 하고, 베옷에다가 삿갓을 쓰고 친히 양식을 짊어지게 했다. 진이는 스스로 송라원정(松蘿圓頂)을 머리에 쓰고 갈포 저고리와 베치마를 입고 짚신을 끌고 대나무 가지를 짚고 따랐다. 두 사람은 몇 달간 절에서 걸식하며 금강산 곳곳을 다녔다. 그러나 이생원은 탓하지 않았다. 사대부들조차 산천을 유람하는 것이 쉽지 않은 시대에 여자의 몸으로 대갓집 자제를 길동무 삼아 산천을 유람했던 사람이 황진이였다.





 철 따라 옷 갈아 입는 금강산


한편 금강산으로 들어가기 전에 넘어야 하는 ‘단발령(斷髮嶺)’은 강원도 김화군 통구면과 회양군 내금강면 사이에 있는 고개로 높이는 834m이다. 일설에는 신라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麻衣太子)가 이 고개에서 삭발했다고 해서 단발령이라고 했다고도 하고, 이 고개를 넘어서서 금강산을 바라보면 아름다움에 반하여 머리를 깎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고 해서 단발령이라고 했다고도 한다.


박지원은 『열하일기』 중 ‘도강록 6월 27일’에서 단발령에서 바라본 금강산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내가 일찍이 신원발(申元發)과 함께 단발령에 올라 멀리 금강산을 바라보았다. 마침 가을 하늘이 짙푸르고 넘어가는 해가 비꼈는데, 산이 하늘 높이 솟아 아름다운 빛과 윤기 있는 맵시가 비할 데 없어서 미상불 금강산이 다르구나 하고 감탄했었다.’


옛사람들은 유점사 서쪽을 내산(內山), 동쪽을 외산(外山)이라 일컬었다. 예부터 내·외산에는 뱀과 호랑이가 없어서 밤에 다니는 것을 금하지 않았다고 한다. 금강산의 최고봉은 ‘비로봉’이다. 거센 바람이 바로 치솟아서 거기에 오르면, 비록 여름이라 하여도 오히려 추워서 솜옷을 입어야 한다.


‘만물상’은 금강산의 10가지 아름다움 중 산악미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다. 깎아지른 층암절벽, 다양한 형태의 기암괴석이 솟아있다.


특히 이곳에는 한하계, 만상계, 망양대 등의 명소가 있다. 맑은 물이 옥빛처럼 흘러내리는 골짜기인 ‘옥류동’은 사면이 산봉우리에 둘러싸여 있어 더욱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옥류동 안에는 맑고 푸른 담소 옥류담이 있다. 옥류담과 함께 금강산 곳곳에는 비봉폭포, 구룡폭포 등 금강산의 풍치와 힘찬 기상을 상징하는 폭포가 흐른다.


아름다운 모습처럼, 여러 전설도 있다. 8개의 담이 연이어지는 상팔담에는 ‘선녀와 나뭇꾼’ 전설이 전해진다. 상팔담이 바로 선녀가 목욕했던 못이라는 것. 삼선암에는 네 명의 신선이 만물상 경치를 감상하다 돌로 굳어졌다는 전설이 흐른다.

나라 안의 모든 산 중 아름답기로 소문난 금강산을 서울에서부터 천천히 걸어서 오를 날은 그 언제쯤일까?


 

※ 본 콘텐츠는 산림청 격월간지 '매거진 숲'에서 발췌한 기사입니다. 무단 복제를 금합니다.

 


#내손안의_산림청,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