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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촌에 살어리랏다! 귀산촌 이야기> '감'으로 마을의 미래를 걸다 ①

대한민국 산림청 2017. 7. 4. 13:30

<산촌에 살어리랏다! 귀산촌 이야기>

'감'으로 마을의 미래를 걸다

- 동상면사람들 유승정




 동상면에서 나고 자란 유승정씨에게 귀산촌이란 말은 낯설다. 전주에서 중·고등학교를 마치고 직장생활을 하며 결혼할 때까지 15년을 살았다. 하지만 그는 한 번도 전주 사람이라는 생각이 없었다. 동상면으로 돌아가야한다는 생각이 늘 깔려있었다. 결혼과 함께 그는 고향으로 돌아와 보니, 예전부터 집안에서 만들어오던 감식초를 사업화하여 한살림생활협동조합에 납품하고 있었다. 어머니 아버지가 하던 일이었다.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감식초 사업을 마을사업으로 키우는 것이었다. 젊은 사람들을 규합하여 영농조합법인을 만들었다. 감식초에서 돌복숭아음료까지 품목도 다양화했다. 감을 이용한 6차산업으로 마을의 미래를 열어가겠다는 것이 유대표의 꿈이다. 그 바탕에는 전국 50만 한살림생협 조합원이 있다. 30년 동안 농·산촌융복합 6차산업의 기틀을 만들어 온 것이다. 하지만 그가 꿈꾸는 6차산업은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했을 뿐이다.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동상면 전체를 감 클러스트로 만들려 한다. ‘동상면사람들’이라는 법인의 수익사업이 아니라 지역주민과 함께 소통하며 소득을 창출하여 분배하는 개념으로 보고 있다. 법인은 단지 시범사업을 하여 가능성을 보여주고, 마을주민들이 적극적으로 나설 때 교육하고 홍보하고 소통하는 창구 역할을 통해 성공시키려 한다.




 귀향해 감식초를 상품화하다


동상면사람들의 대표를 맡고 있는 유승정씨는 전주시에 있는 중학교에 진학 하면서 나고 자란 동상면 집을 떠났다. 전주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잠시 직장생활을 하다 28살이 되던 해 결혼과 함께 동상면의 집으로 돌아왔다. 15년 정도 외지에 살다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다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그가 한 일이 바로 가내수공업 형태의 감식초 사업을 영농조합법인 형태로 바꾸면서 마을사업으로 키워나간 것이다. 5명이 함께 출자를 해 동상영농조합법인(이후 영농조합법인 동상면사람들로 바뀜)을 설립했다. 국내 최초로 감식초를 상품화하여 한살림생활협동조합에 납품한 유씨 부모님의 일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으니 유씨는 귀산촌 사례라고 하기보다 귀향 후 가업을 키워가고 있는 것이다. 전북 완주군 동상면 수만리에는 감나무가 보이지 않는다. 해발 6백미터 정도의 산들에 둘러싸인 작은 분지인 동상면 수만리는 농경지가 거의 없는 전형적인 산촌마을로 감나무의 집단적인 재배지가 없다. 그런데 어떻게 국내 최초의 감식초 생산이 이루어졌고, 감과 관련한 가공식품만으로 한 해 6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게 된 것일까? 답은 산에 있다. 감나무가 마을 가운데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을을 둘러싼 산에, 그것도 산의 8부 능선에 해당하는 높은 곳에 여기저기 자라고 있다. 언제부터, 왜 산 높은 곳에 감나무들이 있게 되었을까?
 


“우리들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부터 있었다고 합니다. 고욤나무에 접을 붙인 것이라고 하는데 정확하게 언제부터였는지는 알 수 없어요. 대대로 각 집안별로 감나무들을 물려받아 왔다는 것밖에는 알 수 없어요.”


가장 오래된 나무가 3백년쯤 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하지만 그것도 정확하지는 않다. 단지 아주 오래전 조상들이 심었고, 그 나무들이 집안마다 상속돼 온다는 것뿐. 물론 산의 대부분은 국유림이나 도유림이다. 그 감나무가 마을주민들 수입의 8할을 차지한다. 지금은 대부분 동상면사람들이 수매를 하고 있지만 그 전에는 곶감을 만들어 팔거나 하였다는 것이다. 게다가 산은 험한 돌산이라 감을 수확하는 것도 매우 어려운 작업이었으니 삶이 고단했던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감이 토종이라 과실크기가 작죠. 또 야생 상태에서 자라다보니 육안상으로는 상품성이 떨어집니다. 하지만 당도라거나 맛은 밭에 식재한 감이 감히 따라올 수 없습니다.”





 전통식품의 재발견, 얼굴 있는 먹거리


감과 함께한 마을이니 감식초를 만들어 먹던 주민들이 많았다. 마을의 전통적인 식품향료로 발달한 것이다. 그의 부모도 그랬다. 한살림생활협동조합이 처음 만들어져 막 서울시내에 매장을 내던 1987년이었다. 그의 부친과 인연이 있었던 한살림의 당시 대표였던 이상국씨가 동상면에 내려와 그의 집에 머문 적이 있었다. 그때 처음 감식초를 맛보고는 매장에서 팔 수 있도록 상품화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 그 제안을 받아서 첫 상품을 출시, 서울 한살림매장에서 판매한 것이 1987년이었다. 한살림이 2016년 창업 30년 기념행사를 했으니 둘은 같이 성장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살림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식품유통회사가 아니라 안전한 먹거리를 매개로 모인 생활협동조합이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하나의 협동조합 내에서 직거래를 하는 형태를 취한다. 그래서 한살림의 생산자가 된다는 것은 생산물(상품이 아닌 물품이라고 한다)에 대한 책임의 강도가 유통회사에 납품을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소비자가 생산하는 전 과정을 직접 지켜보기 위해 방문하는 일도 잦다. 서로의 생활을 책임진다는 의미에서의 조합이기 때문에 가격이 아니라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 얼굴 있는 먹거리, 그것이 생활협동조합을 통한 물품의 공급과 소비의 핵심요소고,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농·산촌융복합 6차산업의 관건이기도 하다. 그것이 또 하나의 산업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유씨는 그런 소비자의 생산지 견학을 관광상품화 하는 것에 주목했다. 소비자들이 많이 찾아와 줄수록 물품의 신뢰도는 높아지고 공급량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동상면처럼 조용한 산촌마을은 도시 소비자들에게 더없이 좋은 휴식과 치유의 공간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런 경험을 지금까지 많은 방문객들을 받으면서 했던 것이다. 그런데 3년 전 현재의 위치로 공장을 옮기면서 문제가 생겼다. 방문객들이 찾아와도 묵어갈 숙소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전에도 좁은 집에서 많은 사람들이 불편하게 묵는 것에 한계를 느껴 본격적인 숙소의 필요성을 절감했었다.


 “생산관리지역엔 숙박업소를 지을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동상면사람들과 같은 법인은 6차산업으로 갈 수 있는 길이 막힌겁니다. 이미 부지 2천 5백 평도 확보해 놨습니다. 정부에서 6차산업의 경우 생산관리지역에 대해 체육시설, 식당, 숙박업 등 일부 시설을 허용하는 쪽으로 법을 개정한다는 얘기를 듣고, 그 결과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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