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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마른 대지 위에 꽃 피운 목련 동산 - 천리포수목원장 故 민병갈

대한민국 산림청 2017. 7. 5. 09:30

메마른 대지 위에

피운 목련 동산

- 천리포수목원장 故 민병갈



글. 박정원(조선뉴스프레스 월간 <산> 부장), 일러스트. 정윤미





 목련을 보면 꽃과 동시에 떠오르는 사람이 바로 민병갈이다. 목련은 그의 분신이나 다름없다. 태안반도의 한 귀퉁이에 꽃동산을 일궈 지구상의 목련을 전부 모으려 했던 사람이다. 일제 패망 후 미군 장교로 한국에 첫발을 디뎠던 그는 57년간 한국에서 살며 2002년 81세의 나이로 천리포수목원 목련 동산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지금 천리포수목원엔 그의 동상이 그의 발자취 일부만 대변할 뿐이다.




국립수목원 ‘숲의 명예전당’에 헌액된 인물은 모두 5명. 그중 별로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 눈에 하나 띈다. 그의 이름은 민병갈. 한국 이름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이리저리 자료를 살펴본다. ‘아니, 이렇게 한국을 사랑한 외국인이 있었다니!’ 그의 본명은 Carl Ferris Miller. 그는 1960년대 초 민병갈이란 한국 이름을 가졌다. 그가 한국은행 고문으로 한국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을 때였다. 당시 한은 총재는 민병도씨. 한은 총재의 성이 그의 가족 이름인 밀러와 비슷하게 발음돼서 ‘민’이란 성을 갖게 됐다. 이름은 병도의 ‘병’자와 그의 이름 첫 글자인 칼을 부드럽게 발음한 ‘갈’로 지었다. 그래서 민병갈이란 이름이 탄생한 것이다. 당시까지만 해도 그는 식물학자가 아닌 통역 정보장교로 한국에 온 미군일 뿐이었다.


그런 그가 어떻게 새천년 첫 식목일을 맞아 지난 세기 한반도 산림녹화와 관련한 위대한 업적을 이룬 다섯 명의 인물에 포함됐을까? 그것도 1만 5,600여 종류의 국내 최다 식물을 보유한 사립 수목원이자 지난 2000년 국제수목학회로부터 아시아 최초이자 세계 12번째로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에 이름을 올린 수목원을 조성하게 됐을까? 정말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한국에 첫발을 디딘 건 1945년 수목원과 전혀 상관없는 정보장교로서였다. 정보장교로서의 임무는 1946년 여름, 10개월 만에 끝났다. 그는 다시 펜타곤을 찾아가 서울 근무를 신청했다. 1947년 1월다시 한국을 찾은 그는 일본인 재산을 관리하는 일을 했다. 서울의 미 군정청에서 근무한 2년은 한국의 자연을 익히는 기간이었다. 군정 시절 그는 치악산과 오대산, 속리산과 지리산, 한라산 등지까지 마음껏 즐겼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군정청이 문을 닫고,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도 인천상륙작전에 맞춰 다시 한국을 찾을 정도로 한국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1953년 한국은행에 취직하면서 한국에 터전을 내렸다. 이때부터 한국의 자연과 지리를 답사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가 천리포와 인연을 맺은 건 지극히 우연이었다. 1950년대말 한국은행 고문직에 있을 때, 여름철만 되면 휴가차 만리포해수욕장을 찾는 일이 잦았다. 서해 낙조가 큰 매력이었고, 주민과의 대화도 큰 즐거움이었다. 1962년 천리포와 운명적인 만남이 이뤄졌다.


그해 여름, 만리포를 찾은 민병갈은 이웃 천리포에 산책을 갔다가 마을 노인으로부터 간절한 부탁을 받는다. 그 노인은 딸의 혼수비용이 필요하다며 자신의 야산 6,000평을 사달라는 전혀 의외의 내용이었다. 민병갈은 노인의 사정이 딱해 보여 돕는 셈 치고 야산을 샀다. 이 6,000평이 지금 18만여 평의 천국을 이루는 단초였다.


미국인이 땅을 샀다는 소문이 돌자 여기저기서 황폐한 땅을 가진 소유주들이 민병갈을 찾아와 자기 땅도 “사 달라”고 졸랐다. 이듬해부터 조금씩 사들여, 1966년 말에는 1만 9,000평으로 늘어났다. 1970년 민병갈은 드디어 천리포를 아담한 자연동산으로 가꿀 각오를 한다. 한국 최초의 사립수목원 탄생의 순간이기도 했다.





한국은행 고문으로 있으면서 천리포를 오갈 때는 꼭 홍릉수목원에 들러 종자 채집을 배우는 동시에 수목을 사들였다. 재개발로 해체될 운명이던 서울의 한식 기와집을 고스란히 천리포로 운송해서 전통 한옥 기와집과 초가집을 보전했다. 그는 이미 영국 왕립아세아학회(RAS: Royal Asiatic society)을 통해 한국의 곳곳을 단체여행하면서 전통 가옥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 있던 터였다. 여행 다니면서 국내 희귀종이나 자생종을 빠지지 않고 수집했다. 특히 호랑가시나무와 목련, 단풍나무, 동백, 무궁화를 주요 5속으로 꼽아 관리했다.


그중에서도 호랑가시나무와 목련을 가장 아꼈다. 그도 초기에는 “목련이나 장미 등 보기 좋은 꽃에 집착했다”고 밝힌 바 있다. 목련학회와 호랑가시나무학회도 천리포수목원에서 개최했고, 국제수목학회에 참석해 종자교환과 양묘업자와 교류도 활발히 했다. 세계 50여 개국에서 수집한 1만 여종의 식물이 천리포수목원에 고스란히 자라고 있다. 목련류는 전 세계 500여 종 중 410여 종을 모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국에서 들여온 수종의 규모는 국립임업시험연구원보다 많다고 한다. 수목원 전시관에도 목련류 500여 종류, 호랑가시류 400여 종류, 동백나무류 300여 종류, 무궁화 300여 종류, 단풍나무류 200여 종류 등을 보유하고 있다고 안내한다. 또 국내외에서 천리포수목원을 인증한 분야도 수두룩하다. 세계수목학회에서 인증한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 미국 호랑가시학회가 공식 인정한 호랑가시 수집 수목원, 환경부가 지정한 생물다양성 관리기관 등이다.


목련은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즐겁게 한다. 탐스럽게 활짝 핀 목련은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가장 널리 알려진 백목련, 수목원에서 가장 먼저 방문객을 맞는 자목련, 가장 일찍 피는 얼리버드, 가장 늦게 피는 손난지목련, 큰별목련, 노란목련 등 이름도 가지가지다. 빨갛고, 노랗고, 희고, 주황색을 띤 목련까지 목련이 수놓은 천리포수목원은 화려하고 아름답다. 보는 이는 형형색색의 목련으로 눈의 호사를 잔뜩 누린다. 화려한 목련꽃 사이로 플래카드가 하나 보인다. 2020년 제57회 세계목련학회를 천리포수목원에서 개최한다는 내용이다.


목련을 보면 꽃과 동시에 떠오르는 사람이 바로 민병갈이다. 목련은 그의 분신이나 다름없다. 태안반도의 한 귀퉁이에 꽃동산을 일궈 지구상의 목련을 전부 모으려 했던 사람이다. 일제 패망 후 미군 장교로 한국에 첫 발을 디뎠던 그는 57년간 한국에서 살며 2002년 81세의 나이로 천리포수목원 목련 동산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지금 천리포수목원엔 그의 동상이 그의 발자취 일부만 대변할 뿐이다. 그의 분신을 보기 위해 지난 2014년 단일 수목원으로 처음 방문객 30만 명 돌파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외국인 최초로 한국에 귀화한 민병갈은 세계적인 임목육종학자인 현신규 박사, 평생 종자채집을 해온 김이만 옹, 축령산 편백숲을 조성한 임종국 씨, 그리고 산림녹화정책을 국가시책으로 추진한 박정희 대통령 등과 나란히 ‘숲의 명예전당’에 헌액돼 있다. 앞으로는 또 어떤 인물이 헌액될지 궁금하다.





※ 본 콘텐츠는 산림청 격월간지 '매거진 숲'에서 발췌한 기사입니다. 무단 복제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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