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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의 등뼈에 서다> 백두대간 세 번째 산줄기 설악산

대한민국 산림청 2017. 7. 11. 16:30

공룡의 등뼈에 서다
백두대간 세 번째 산줄기
설악산



글. 신정일(문화사학자, 사단법인 우리 땅 걷기 이사장)





 ‘사는 것이 외롭다고 느낄 때는 지리산의 품에 안기고, 기운이 빠져 몸이 쳐질 때는 설악산의 바위 맛을 보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설악의 바위를 마주하려면, 금강산 남쪽으로 가야 한다.


■ 대표적인 바위 산


“그 산 역시 돌산과 돌샘으로 되었으며, 높고도 험한 낭떠러지를 이루고 있으며, 깊숙하고도 싸늘하다. 첩첩으로 된 산악과 높은 숲이 하늘과 해를 가리고 있다.”


이중환이 지은 『택리지』에 실린 글이다.

설악산(雪嶽山)은 악(嶽)이 들어간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 대표적인 골산(骨山)이다. 금강산에 버금가는 명산과 명승으로 자연경관이 빼어나고 문화재와 관광명소가 많아 산 일대가 1970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한가위에 덮이기 시작한 눈이 하지에 이르러 녹는다 하여 설악이라 한다.’ 하였고 『중 보문헌비고』에는 ‘산마루에 오래도록 눈이 덮이고 암석이 눈같이 희다고 하여 설악이라 이름 짓게 되었다.’고 적고 있다.


그래서 설산(雪山) 또는 설봉산(雪峰山) 설화산(雪花山)이라고도 하며, 겨울뿐만 아니라 사계절 모두 독특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신라 때에는 영산이라 하여 나라에서 제사를 지냈고 또 옛날에는 바다를 지나가는 배들의 길잡이가 되기도 했다. 금강산에 가려서 사람들에게 그리 알려지지 않았던 설악산을 두고 육당 최남선은 다음과 같이 예찬했다.


“탄탄히 짜인 맛은 금강산이 더 낫다고 하겠지만 너그러이 펴인 맛은 설악산이 도리어 낫다. 금강산은 너무나 드러나서 마치 길가에서 술 파는 색시같이 아무나 손을 잡게 된 한탄스러움이 있음에 견주어 설악산은 절세의 미인이 골짜기 속에 있으되 고운 모습으로 물속의 고기를 놀라게 하는 듯이 있다. 참으로 산수풍경의 지극한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이라면 금강산이 아니라 설악산에서 그 구하는 바를 비로소 얻게 될 것이다.”



설악산의 최고봉인 대청봉(1,708m)에서 북쪽의 마등령, 미시령, 서쪽의 한계령에 이르는 능선을 ‘설악산맥’이라 부르며 한계령을 중심 으로 한 서쪽지역을 ‘내설악’, 동쪽지역을 ‘외설악’으로 크게 나눈다.


대청봉의 동북쪽에 있는 호채봉과 서쪽에 있는 귀떼기청봉, 대승령, 그리고 안산을 경계로 그 남쪽을 ‘남설악’이라 한다.

내설악은 깊은 계곡이 많고 물이 풍부해 설악에서도 가장 빼어난 경승지를 이룬다. 백담사(百潭寺)를 기준으로 백운동계곡, 수렴동계 곡, 가야동계곡이 계속된다. 가야동계곡에서 출발해 외설악의 설악 동에서 넘어오는 마등령을 지나 좀 더 올라가면 우리나라 암자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고 5대 적멸보궁(석가모니 부처의 진신 사리를 모신 법당)의 한 곳인 봉정암에 이른다.


외설악은 천불동계곡을 끼고 기암절벽이 웅장하다. 설악동에서 신흥사를 거쳐 계조암에 이르면 그 앞에 흔들바위가 있고 여기서 조금더 오르면 사방이 절벽으로 된 높이 950m의 울산바위가 있다. 이 바위에 대한 전설이 재미있다.



■ 길 잃은 울산바위가 눌러 앉은 곳


옛날 조물주가 천하에 으뜸가는 경승을 하나 만들고 싶어 세상 모든 산의 봉우리들을 금강산으로 불러들여 심사를 했다. 그때 경상도 울산 땅에 그 형상이 울타리처럼 생긴데다 천둥칠 때 울린다고 하여 울산바위라고 이름 붙은 바위도 소식을 듣고 급히 금강산을 향해 달려갔다고 한다. 그러나 너무 늦어 금강산에는 들지 못했다. 그대로 울산으로 되돌아가자니 체면이 우스워질 것이라고 걱정하던 울산바위는 결국 고향으로 되돌아가지 않고 새로이 정착할 곳을 물색 하다가 하룻밤 쉬어갔던 설악이 괜찮다 싶어 지금의 자리에 눌러앉기로 하였다고 한다.


신흥사 일주문을 지나 왼쪽으로 가면 대청봉으로 이어지는 천불동 계곡이 나타난다. 이 계곡에는 와선대와 비선대, 금강굴이 있고 비선대부터는 본격적인 등산로로 계곡을 계속 타면 대청봉에 이른다.


공룡처럼 생겼다는 공룡능선과 하늘에 핀 꽃이라는 천화대 능선 그리고 그 양쪽에 솟은 봉우리들이 마치 불상 몇천 개를 새겨 놓은듯 하다고 해서 이름이 붙은 천불동계곡을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 용의 이빨처럼 생겼다는 용아 능선, 구곡담 계곡과 가야동 계곡 이 밖에도 권금성(權金城), 백담계곡, 비룡폭포, 토왕성폭포 등이 설악산의 절경을 이루는 데 한몫을 하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권금성에 대해 ‘설악산 꼭대기에 있으며 석축 이다. 둘레는 1천 1백 12척(1척은 30.30cm)이고 높이는 4척이었는데 지금은 반쯤 무너졌다. 세상에 전해오기로는 예전에 권 씨 김 씨 두집이 여기에 피란한 까닭으로 이름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권금성은 집선봉과 봉화대 주위에 쌓은 산성으로 ‘옹금산석성’ 또는 ‘설악 산고성’으로도 불리는데 『낙산사기』에 ‘몽고의 난 때 양양부민이 설악산에 성을 쌓아 적을 막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 때 쌓은 성으로 추정된다.



■ 수려한 폭포가 자리하다


남설악은 한계령과 점봉산으로 이어지고, 우리나라 3대 폭포의 하나라는 88m 높이의 대승폭포와 장수대·주전골 입구의 오색약수와 오색온천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 개성의 박연폭포, 금강산의 구룡폭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폭포 중의 한 곳이며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이 피서지로 삼았다는 대승폭포가 있다.


전설에 따르면 옛날에 일찍 부모를 여읜 대승이라는 총각이 이 폭포의 절벽에서 자라는 석이버섯을 따서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다. (석이버섯은 바위에 피어나는 버섯인데, 설악산의 특산물로 험한 낭떠러지 벼랑에서 드물게 볼 수 있다.) 어느 날 대승이 절벽에 동아줄을 매달고 내려가서 석이버섯을 따고 있는데, 갑자기 죽은 어머니가 “대승아, 대승아” 하고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소스라치게 놀란 대승이 버섯을 따다 말고 동아줄을 잡고 올라가니 어머니의 모습은 찾을 수 없고 그가 매달려 있던 동아줄을 신짝보다 더 큰 지네가 갉아먹고 있었다고 한다. 어머니가 부르지 않았더라면 벼랑에서 떨어져 죽을 뻔했던 대승이 목숨을 건진 후 이 폭포는 대승폭포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이곳 한계령의 동쪽 골짜기에서 시작된 물이 오색약수터를 지나 양양의 남대천이 되어 바다로 들어간다. 개울가의 바위를 뚫고 세 군데에서 솟아나는 오색약수터는 1500년쯤에 오색석사(五色石寺)의 스님이 발견했다고 한다. 다섯 가지의 꽃이 피어 오색석사라고 불렀던 이 절은 지금은 폐사되었다.


예로부터 “금강산이 수려하기는 하되 웅장한 맛이 없고 지리산이 웅장하기는 하되 수려하지 못한데 설악산은 수려하면서도 웅장하다.”는 말이 내려오고 있다.


사실 설악산은 금강산의 절경에 치어 사람들에게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한국 전쟁 이후 휴전선에 가로막혀 금강산을 찾지 못하게 된 사람들이 ‘꿩 대신 닭’이라고 설악산을 찾게 되면서 그 진면목이 알려졌고 지금은 남한의 제일가는 명산으로 손꼽힌다.




※ 본 콘텐츠는 산림청 격월간지 '매거진 숲'에서 발췌한 기사입니다. 무단 복제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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