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est 소셜 기자단 -/2017년(8기)

마음이 편안해지는 길, 천혜의 요새 죽주산성과 비봉산

대한민국 산림청 2017. 10. 11. 16:30

천혜의 요새 죽주산성과 비봉산




산행코스 : 주차장 - 동문 - 포루 - 서문 - 비봉산 - 서문- 남치성 - 남문 - 동문 (3시간)




죽주산성 동문


죽주산성 아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보도블록으로 포장된 길을 따라 잠시 올라서면 죽주산성의 정문역할을 하고 있는 동문이 나온다. 남한산성이나 공산성 등 여타의 성문처럼 근사한 문루가 없으니 정문이 약간 초라해 보이지만, 경사진 산비탈 중간이라 방어적인 측면에서는 꽤 괜찮아 보인다.




중간에 비봉산을 다녀오지만, 어차피 원점회귀 한 바퀴. 어느 쪽으로 돌아도 마찬가지라 잠시 머뭇거리다 우측으로 길을 잡았다. 초록빛 융단이 곱게 깔린 완만하고 넓은 성곽길은 남녀노소 누구나 어렵지 않게 걸을수 있는 산책길 같다.


죽주산성은 천혜의 요새로 유명한 산성 이다.


후삼국시대에 견훤이 이곳에서 9년을 머물며 후백제의 기초를 다졌고, 고려시대에는 몽고군을,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 때 왜군을 물리친 곳이기도 하다. 선조실록에 오성과 한음으로 유명한 한음 이덕형이 상소를 올려 <죽산 취봉(鷲峰)은 형세가 매우 든든하여 단 한 명의 군사로도 길을 막을 수 있는 험한 곳> 이라 하였듯이 이 산성은 천혜의 요새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한국의 마추픽추라고도 불리는 곳 이다.




우측 성곽길을 따라 조금 오르자 갑자기 시야가 확 트이며 넓은 공터가 나온다.
안내도에 포루 라고 되어 있고, 지금도 포루 구조물이 남아 있다.




주변 시야가 좋아 적의 동태를 살피기에 딱 좋아보인다.
포루와 오동나무 한 그루가 멋진 그림을 만들어 낸다.



포루에서 바라본 안성시 죽산면 매산리 일대


죽주산성과 죽주의 유래에 대한 안내도


우측으로는 망이산 이라고도 불리우는 마이산


저 마이산 우측 아래에 중부고속도로가 지나는 화봉육교가 있는데 그곳이 수리티다.
수리티는 진흥왕때 백제와 고구려의 최전방으로 수리티 아래로 미호천 상류지역은 신라가 고구려에 대항하기 위해 만든 백제와의 나제동맹을 깨고 옛 백제땅을 차지한후, 금관가야를 헌납하고 신라의 진골이된 김유신 가문중에 당시 금관가야의 왕자였던 김유신의 조부 김무력을 이곳 최전방에 군주로 파견하게 된다. 그리고 훗날 고구려를 방비하고 있어야할 이곳 최전방 전투부태가 몰래 전방을 비워놓고 남하하여 백제군의 허를 찌른 백골산 전투는 신라와 백제의 전세와 국운을 뒤집게 된다.




북쪽 성벽은 계곡의 모양을 따라 V자 형태로 되어 있는데, 죽주산성 안내지도를 보니 이 북쪽 성곽 아래로 다시 V자형 계곡을 틀어막아 반듯하게 만든 중성과 그 아래로 지형을 따라 지어진 외성이 있다.




서쪽과 북쪽 성벽이 만나는 지점에 외성벽을 따라서 비봉산으로 가는 갈림길이 있다.
일단 비봉산을 다녀와서 나머지 성벽길을 걷도록 한다.




외성은 아직 복원이나 관리가 안되고 있는듯 옛 성벽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것 같다.
편안한 외성 성벽위를 잠시 걷다보면 이내 비봉산으로 갈라지는 이정표가 나온다. 이곳에서 성벽길을 버리고 비봉산을 향해 산을 내려선다. 죽주산성에서 비봉산으로 가는길은, 중간에 안부까지 내려섰다가 다시 올라서야 한다.




경기 옛길 영남길... 영남길이 영남에 있지 않고, 경기도에 있다.
옛날 조선시대에 일본과의 외교를 위해 조선통신사가 지나가던 길이라고 한다.
그런데 수리티로 넘어가는 넓고 좋은길을 놔두고 왜 이 좁은 산길로 다녔을까나...




비봉산 정상부는 평평하고 넓게 형성되있다.
봄이면 벚꽃으로 아름다울, 초록의 나뭇잎 사이로 내비치는 햇살이 아늑함을 준다.




돌탑과 정상석이 있는 비봉산 정상
비봉산 정상의 벤치에 앉아 간식도 먹고 쉬며 조망을 한다.




비봉산 정상에서 바라본 죽산면

죽산면도 조선시대에는 죽산부로써 죽산면 죽산리를 읍치로 두고, 안성시의 죽산면, 일죽면, 삼죽면과 용인시의 백암면, 원삼면 일부 지역을 관할하였다고 하니 상당히 큰 영역의 행정 중심지였던 곳 이다. 산 아래 마을에는 아직도 향교가 남아 있다. 그래서 이 작은 산이 대전 진잠의 산장산 처럼 조선시대 각종 지도에 나오는 것이다.




서쪽 성벽길

정상벤치에 앉아 한참을 쉬다가 다시 산을 내려와 온길을 걸어 죽주산성 서문지로 돌아와 다시 서쪽 성벽을 타고 나머지 성벽 길을 걷는다.




서쪽 성벽과 남쪽 성벽이 만나는 곳으로 지도상 이름은 남치성 이다.




남치성에서 바라본 남쪽 성곽과 왼쪽의 남문지



남문성벽길에서 바라본 17번 국도와 뒤로 한남금북정맥의 산들




다시 맨처음 진입했던 동문을 향한 동쪽 성벽의 나머지 구간을 걷는다. 포루에 오르는 동쪽 성벽과 같이 이곳 성벽도 초록융단이 곱게 깔려 있다.




다시 처음 들어왔던 동문으로 빠져 나와 포루로 올라서는 동쪽 성벽을 담아내고서 죽주산성과 비봉산 산행을 마친다. 난공불락 이었다고 하는 산성의 원형이 잘 보전되어 있고, 완만하고 걷기 편안한 성곽둘레길 그리고 이어지는 비봉산 까지 힘들지 않은 숲길은 마음이 차분해지고 편해지는 길이며 아름다운 길이다.






※ 본 기사는 산림청 제8기 블로그 기자단 전문필진 박재성 기자님 글입니다. 콘텐츠의 무단 복제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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