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기는 산림청/나는 임업인이다

<산촌에 살어리랏다> 내장산 산촌에서 꿈 이룬 청춘! ①

대한민국 산림청 2017. 11. 1. 09:30


성공 귀산촌人 - 오덕수씨




 오덕수씨는 전주시에서 작은 IT업체를 운영하던 이른바 벤처기업가였다. 2013년 화재로 모든 것을 잃으면서 꿈은 날아가고 그는 집에 틀어박혀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 지인이 바람이나 쐬러가자며 데리고 온 곳이 장성 별내리마을이었다. 그의 지인은 마을이장과 친분이 있었다. 그날 그는 이장으로부터 마을에 대한 소개와 함께 산촌생태마을 사무장을 구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좌고우면할 처지가 아니었다. 그는 바로 사업계획서와 이력서를 작성해서 다시 마을을 찾았다. 취업이었다. 사무장이 되어 산촌생태마을도 정상화시키고, 마을활성화를 위한 새로운 사업도 꾸려나가고 있다. 고로쇠 수액을 이용한 된장, 간장 만들기와 감 홍시를 이용한 고추장 만들기 및 체험사업이다. 그는 별내리마을에 들어와 결혼도 하면서 이제 별내리 사람이 되었다. 그는 산촌의 미래는 도농교류에 달렸으며 관광과 체험프로그램의 활성화가 관건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도시와 농·산촌의 생활습관과 삶의 양식이 너무나 다르다. 그걸 잘 조율해나가는 것이 도농교류를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는 관건이다.



 화재로 모든 것을 잃었던 순간 찾아온 기회


단풍으로 유명한 내장산 국립공원에서도 수려한 경관미를 자랑하는 계곡을 끼고 있는 작은 마을 별내리(www.jsstar.or.kr). 전북과 전남의 경계에 있는 이 마을은 행정구역상 전남 장성군 북하면 신성리로 남창계곡을 끼고 있어 흔히 남창마을이라고 불려왔다. 2013년 이곳을 처음 찾은 오덕수씨에겐 귀농이나 귀촌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했으니 그런 생각을 해 본 적도 없었다. 그저 지인이 집에서 우울하게 보내지 말고 바람이나 쐬러가자는 말에 따라 나섰을 뿐이다. 전주가 고향이고 전주에서 IT업계의 작은 벤처기업을 운영하고 있던 그는 얼마 전 화재로 모든 것을 다 날려버리고 집에 틀어박혀 힘든 나날들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비록 규모가 작은 기업이었지만 그의 모든 것이 화재와 함께 재로 변한 것이었다. 정말 아무 것도 남은 게 없었다. 몸도 지치고 마음은 더 막막하고 공허했다. 잠깐 여행와서 만난 사람이 마을의 이장이자 남창계곡영농조합법인의 정동일 대표였다. 그는 산촌생태마을 조성사업으로 건립된 마을회관의 운영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정부의 지원으로 수억원을 투자한 건물을 어떻게 운영해야할지 몰라 텅 빈 채 먼지만 쌓여가고 있는 상태였다. 정대표는 마을 자체의 역량으로는 힘들다고 판단, 외부에서 인재를 데려와서 운영을 맡길 계획을 갖고 있었다.





 취직한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그렇다고 오씨를 이곳으로 데려온 그의 지인이 마을의 이런 속사정을 알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단지 정대표와 우연히 얘기를 나누다가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날 즉석에서 건물의 운영방안이나 홍보방안 등에 대해 여러 가지 얘기들을 나누고 헤어졌다. 헤어진 그날 밤 정대표로부터 전화가 왔다.


“우리 마을에 와서 일할 생각이 있는가?”


좌고우면할 여유가 없었다. 오씨는 바로 사업계획서를 작성해서 방문하겠다고 답변을 했다. 당시만 해도 미혼이라 결정하는데 걸림돌도 없었고 시골에 와서 농사짓는 것이 아니라 마을사업에 대한 기획과 실무를 책임지는 사무장이라 크게 낯설다는 생각도 없었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기 보다는 취직을 한다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사업계획서를 가지고 와서 마을 지도자분들 앞에서 면접을 보고 마을회의에 참석해서 승인 절차를 밟아야 했다. 그 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지는 않았다. 마을 주민 중 한 분이 직접 사무장을 하며 건물을 운영해보겠다는 의지를 가진 분이 있었던 것이다. 그 분을 설득하는 과정, 어찌보면 주저앉히는 과정에서 ‘왜 장성 사람도 아닌 전주에서까지 사람을 불러와야 하는가?’하는 불만도 들어야 했다.





별내리마을 회관으로 불리는 건물은 산림청의 산촌생태마을 조성사업(총 사업비 14억원)의 일환으로 건설된 것이었다. 회의실, 사무실, 식당과 5개의 숙소가 있는 다목적 건물이다.  건물 옥상에서 별을 관측할 수 있는 2대의 망원경과 돔이 설치되어 있다. 천문관측시설을 만든 것은 마을 앞산에 첨성대터가 있는데 그것을 모티브로 하여 설치하게 된 것이다. 오씨는 2013년 7월 건물에 딸린 조그만 기숙사가 있어서 거기에 기거하면서 일을 시작했다. 산촌생태마을 사무장 겸 영농조합법인 사무장을 겸해서 였다. 물론 월급을 받기로 했다. 마을에서는 수익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월급을 지급해야 하는 처지여서, 기본급은 적게 하고 운영을 통해 수익이 발생하면 인센티브를 받는 조건이었다. 오덕수씨는 동기부여 차원에서 그런 조건을 자원했다.






 산촌 경영의 전문가를 꿈꾸며


오씨는 과거 여행 다니면서 보고 느낀 경험을 살려 회관에 필요한 물품들을 하나씩 구입하기 시작했다. 여름 휴가철과 단풍철을 앞두고 숙박 손님을 맞을 준비부터 한 것이다. 광주광역시에서도 가깝고 인근 정읍시에서도 찾는 사람들이 많아 시작과 함께 바쁜 나날들이었다. 내장산 국립공원의 수려한 계곡이라 예약 없이도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숙박 손님들이 줄어드는 계절을 맞아 그는 광주전남 별사랑동호회에 가입하여 천문관측에 대해 배우기 시작했다. 동호회를 따라다니며 별자리, 망원경사용법 등을 배우고, 전문가들을 초청하여 회관의 돔과 망원경 시설을 관측 가능하도록 최적화시키는 작업도 진행했다.





“동호회에 도와달라는 장문의 편지를 썼습니다. 화답으로 그들이 찾아왔는데 망원경 시설이 전문성이 떨어지게 시공돼 있었어요. 망원경을 지탱하는 가대가 목재위에 시공돼 있었어요. 배율이 높은 망원경은 미세한 움직임에도 영향을 받기 때문에 콘크리트 위에 고정돼야 합니다. 그런 문제들을 하나둘씩 해결해나가면서 동호회 모임에도 적극적으로 참가하기 시작했죠. 2년 정도 그들을 따라다니다 보니 이제는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이 오면 별에 대해 설명을 해줄 정도까지 되었습니다. 별의 생성이나 계절별 별자리 위치, 망원경 보는 법 등. 물론 이곳에 오기 전에는 전혀 몰랐죠.”








봄 여름 가을 겨울 그가 오고 2014년부터는 농림부의 농촌체험휴양마을 사업에도 선정이 됐다. 마을에선 사무장도 생기고 하니 새로운 사업에 욕심을 낸 것이다. 농촌체험휴양마을로 지정받기 위해서는 마을에서 준비를 많이 해야 했다. 이미 산림청 산촌생태마을 사업을 위해 만든 영농조합법인에 8백만원씩을 출자했던 마을주민들은 또 2백만원씩을 더 출자했다. 마을에 총 가구수가 26가구인데 조합원에 가입한 세대가 13세대니 절반이 참여한 것이다. 체험시설로 조성한 부지에 썰매장을 만들기 위해 양수기로 물을 받아 보기도 하고 비닐하우스 3동을 지어서 곤충체험학습장도 만들었다. 장수풍뎅이, 하늘소 등 곤충도 구하고 전문가를 초청하여 곤충 학습장 운영에 대한 노하우를 전수받았다. 비닐하우스 한 쪽에는 수서생물관찰소도 만들었다. 또 마을로 이어진 산책로를 단장하고 숲해설사와 협약을 맺어 숲체험이 가능하도록 하기도 했다. 그런 마을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농촌체험휴양마을로도 선정이 됐다. 그 결과 오씨는 그 사업의 사무장도 맡아 정부의 인건비 지원을 받게 되었다. 마을의 부담이 줄어든 것이다.





마을의 이름도 바뀌었다. 남창마을은 남쪽에 있는 군수창고란 뜻인데 어감이 좋지 않다는 여론이 많아 별내리마을로 바꾸고 로고도 만들고 등록도 마쳤다. 마을의 이름을 바꾸고 로고를 만드는 것도 쉬운 과정은 아니었다. 주민들은 저온저장고와 같은 눈에 보이는 시설물이 들어오는 것은 환영하지만 캐릭터나 마을 디자인 같은 것에 돈 쓰는 것에는 반대가 많아 설득하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요즘은 마을마다 특산품을 캐릭터로 만드는 것이 유행이고, 또 그 캐릭터들이 거의 천편일률적이라 좀 식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마을 이름 로고만 만들었어요. 물론 특산품은 있지요. 봄에는 고로쇠수액, 여름엔 오디, 가을엔 복분자, 겨울엔 감. 전형적인 산촌마을이지요.”








2편에서 계속



#내손안의_산림청,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