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산림청/Magazine 숲

<원더가든> 식물적인 성질이 모여 공간을 이루다, 공간식물성

대한민국 산림청 2017. 11. 21. 13:30

<원더가든>

식물적인 성질이 모여

공간을 이루다, 공간식물성





 화려한 이대역의 뒤편, 가파른 언덕길에 촘촘하게 밀집된 골목은 저마다의 사연이 숨겨져만 있을 것 같다. 좁은 골목을 두어 번 돌고 무지개 색으로 칠해진 계단을 오르고 다시 골목을 돌아 마주한 마포구 염리동 숭문16길 20. 한 블록만 벗어나면 삭막해지고 한 블록만 덜 오면 부산스러워지는 곳, 너무 상업적이지도 그렇다고 너무 한산하지도 않은 거리에 자리한 ‘공간식물성’의 문을 열면 투박 하지만 편안하게 자리한 초록의 작은 화분들이 전하는 환영 인사가 느껴진다. 잘 꾸며진 화원도 아니고 화려한 향으로 가득한 꽃집도 아니지만 작고 푸르른 생명들이 뿜어내는 청량함은 더할 나위 없이 싱그럽다.


 작지만 아름다운 식물이 주는 기꺼운 변화


“식물이 좋아서 매일 접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단순히 식물만 파는 공간이 아니라 ‘식물적인 성질’을 가진 것들을 팔고 싶다는 생각에서 ‘식물성’이라는 이름을 가져왔고요. 식물처럼 자연스럽고 소박한 물건들도 팔고 동시에 사람들과 식물에 대한 공감대도 나누겠다는 의미가 담겼어요.”


원래는 만화와 비디오 대여 공간이었던 이곳을, 정수진 대표는 ‘찜’ 해두 었었고 2년 전 결국 이 공간에 터를 잡았다. “여기에 식물을 놓으면 예쁘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한눈에 반한 장소에 사랑하는 식물을 들여놓고 돌보는 시간이 정 대표는 마냥 행복하다.





“처음에는 제가 좋아하는 선인장과 다육식물의 천국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그런데 이 공간은 관엽식물이 잘 자라는 채광이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관엽식물로 흥미가 옮겨갔어요. 어느새 공간식 물성은 푸른 잎들로 울창해졌어요. 신기하죠? 식물은 동물과 다르게 자기가 선 땅 위에서 살아가야 하기에 환경 적응력이 뛰어나요. 식물을 키우면서 많은 것을 배워요. 이 작은 식물이 저를 변화시켰어요. 식물성에 찾아오시는 분들에게도 이런 멋진 경험을 드리고 싶어요.”


공간식물성에서는 실내에서 기르기 쉬운 식물, 푸름 가득한 관엽식 물, 다양한 크기와 모양을 자랑하는 선인장 및 다육식물은 물론 이들과 어울리는 소품과 액세서리도 판매하고 있다. 크고 작은 전시와 행사도 연다.


오픈 전 텅 빈 공간을 채우기 전에 가졌던 식물성 오픈 기획전 ‘우연한 계절’은 정 대표에게 가장 각별했던 전시다. 우예지 설치 작가 덕택에 비가 내리는 것 같은 시적인 분위기의 창문, 스모그 담긴 비눗방울의 몽환적인 풍경, 흙 한 봉지 안에 별빛의 반짝임 등이 식물성을 채웠고정 대표와 식물성이 가야 할 방향도 뚜렷해졌다.


지난해 9월 진행된 구은정 작가의 개인전 ‘꽃이 지고 피는 시간’도 정대표가 마음에 새긴 전시다. 햇볕 따뜻하게 내리쬐는 바닥 가득 들꽃 씨앗으로 묘비명을 적었다. 감동은 1년 여가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가슴에 울림을 준다. “원하는 만큼 씨앗도 가져갈 수 있었어요.


누군가의 묘비명이었던 글씨들이 각자의 집에 가 새로운 생명을 틔웠겠지요?”





 클래스, 상담소, 책… 식물과 더 가까워지기


올해 초 정 대표에게 반가운 제안이 들어왔다. 스쿨 파스텔에서 기획한 식물 학교 ‘식물 기르고 싶은 처음 학교’ 클래스가 개설되었는데, 이곳에서 강연을 하게 된 것. 봄꽃 화분과 열대 식물 화분 만들기, 카네이션 꽃다발 만들기-쓰다 만 편지, 다육이 가족과 알로카시아 화분 만들기 등 정 대표는 식물에 막 입문한 수강생에게 더없이 좋은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식물을 기르게 된 이야기로 소소하게 시작했어 요. 식물을 기르는 방법이 어떤 분에게는 필요하겠지만, 식물을 기르는 마음 습관에 대해서 돌아보고 나와 내가 기르는 식물이 잘 맞는지도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보통 식물은 예뻐서, 보기 좋아서 구입하게 되지만 일반적인 장식품이 아닌 살아있는 생물이기에 겪을 수 있는 당혹감이나 궁금증 등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어요. 또 가게에 오시는 분들의 사례를 소개하면서 함께 웃기도 했어요. 현실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보기 좋고 건강하게 가꾸는 것 등 필요하고 실용적인 팁들에 대해 알려드리고 싶었어요.”


완성된 화분을 들고 돌아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는 건 정 대표에게 색다른 즐거움이다. 현재는 건강상의 이유로 잠시 휴강 중이지만곧 다시 이어갈 예정이다. 또한 9월 중순에는 서울시립미술관 주관 식물상담소도 운영할 계획이다.


“학교가 일방적인 강의였다면 식물 상담소는 조금 더 실용적인 상담이 주가 될 거예요. 식물에 대한 진단과 처방도 도와드리려고요. 옆에서는 미술작가님이 상담 내용을 듣고 드로잉해서 식물의 건강을 기원하는 부적도 판매한다고 해요. 색다르고 재미있는 시간이 될 것 같아요.”


최근에는 식물에 관한 책 작업도 한창이다. 식물은 이제 더 이상 단순한 식물이 아니다. 반려식물로서 당당하게 집안을 채우고 있다. 식물을 키우면서 겪었던 에피소드를 각 식물의 소개와 함께 에세이 형식 으로 채워가고 있다. 검색만으로는 알 수 없는 관리 방법, 생활 속 정보, 실용적인 팁까지 담아 재미와 정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정 대표의 책이 기대된다.





 식물을 통한 공감과 소통의 즐거움


“오후 1시 경 식물성을 오픈한 후, 식물을 밖에 내놓아요. 30~40분 남짓 물을 충분하게 줘요. 전체적으로 식물을 살펴본 후 자잘하게 배치를 바꾸기도 하고, 식물 화분을 새로 만들기도 해요. 때로는 주문 받은 화분을 제작하기도 해요. 식물의 사진을 찍어 블로그에 올리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해가 저물어 가요.”


미술작가로 활동하던 시절, 일에 대한 강박으로 감정이 피폐해졌을 때 우연히 식물을 키우게 된 정 대표.. 그게 공간식물성의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식물 자체의 아름다움, 여러 가지를 수집한다는 즐거움, 기필코 죽이지 않겠다는 호승심이었지만 키우다 보니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식물을 죽이지 않고 키우면서 컬렉션이 되었고 식물이 모여 있는 모습을 보면서 빠져들기 시작했다.


“일이 되어도 다른 일보다 스트레스를 덜 받겠다 싶었어요. 해보니 확실히 그렇더라고요.”


빙그레 웃는 정 대표의 편안한 얼굴이 식물이 주는 안온 함과 닮아있다.


“식물 자체에서 느끼는 행복함도 있지만 식물을 통해 사람들을 만나고 공감하고 소통하는 일도 즐거워요. 작지만 아름다운 식물이 저에게 의미 있는 변화를 선사해 주었어요.”


용감하게 가게를 열고 식물에 대한 공부를 병행했다. 처음에는 식물 이름도 헷갈리고 정보도 한정적이었지만 관심과 애정을 바탕으로 한궁금증은 금방 폭넓은 지식으로 전환됐다.


“지난해 식물디자이너로 참여했던 국립현대미술관 식물도감전시에서 식물을 분류학적으로 나누는 방식에 대해 새롭게 배울 수 있었어요. 그동안 식물을 관상용으로 바라보았다면 이제는 자연 속 생물이라는 포괄적 인 차원에서 보게 되더라고요. 그 이후로는 학명도 찾아서 쓰려고 노력하게 되었어요. 학명이 알려주는 식물 간 유사성이나 숨겨진 이야 기들이 많아요.”


정 대표는 여전히 배우고 싶고 더 많이 알려주고 싶다. 파리가 수정을 돕는 다육식물 우각, 공기정화에 좋아 집들이 선물로 으뜸이라는 벵갈고무나무, 전자파 제거에 좋다는 필로덴드론 셀로움이나 미세 먼지에 좋다는 드라세나 콤팩타, 봄이면 화사한 꽃을 피워 집 안 가득 향기를 선사하는 긴기아난…. 사시사철 생기 가득한 초록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염리동 골목골목 사이로 들어가 보자. 공간식물성에는 오늘도 문을 열고 나온 화분들이 햇볕을 쪼며 나른하게 앉은 채 찾아올 이를 기다리고 있다. 물을 잔뜩 머금은 화분들이 재미난 이야기를 잔뜩 머금은 채 손짓하고 있으니 말이다.






※ 본 콘텐츠는 산림청 격월간지 '매거진 숲'에서 발췌한 기사입니다. 무단 복제를 금합니다.

 


#내손안의_산림청,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