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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다섯 번째 산줄기> 장대한 바위들이 이룬 명산, 속리산

대한민국 산림청 2017. 12. 11. 13:30

<백두대간 다섯 번째 산줄기>

장대한 바위들이 이룬 명산, 속리산



글. 신정일(문화사학자, 사단법인 우리 땅 걷기 이사장), 사진협조. 속리산국립공원





*속리산은 1970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됐으며 천황봉, 비로봉, 입석대, 문장대, 관음봉 등 빼어난 자태를 자랑하는 봉우리들이 기기묘묘하게 솟아 있다. 국보급 문화재가 즐비한 법주사가 자리해 있어 그 가치를 더한다.



 백두산에서 비롯된 백두대간이 지리산으로 가는 길목인 보은과 괴산군 그리고 상주시에 들러 싸여 있는 속리산. 웅장한 산세와 빼어난 자태의 봉우리들을 자랑한다. 여기에 역사 깊은 법주사의 고고함은 화룡정점을 찍는다. 속리산의 아름다움을 옮겨 적은 옛 문장가들의 명문과 이곳에 얽힌 영험한 전설을 신정일 문화사학자가 들려준다.





웅대한 산세와 구름 위로 솟은 기묘한 석봉
‘속리산은 고을 동쪽 44리에 있다. 봉우리 아홉이 뾰족하게 일어섰기 때문에 구봉산이라고도 한다. 신라 때는 속리악이라고 불렀고 중사(中祀 : 고려와 조선시대 국가적인 규모의 사전(祀典)에서 대사(大祀) 다음가는 제사)에 올렸다. 산마루에 문장대가 있는데, 층이 쌓인 것이 천연으로 이루어져 높게 공중에 솟았고, 그 높이가 몇 길인지 알지 못한다. 그 넓이는 사람 3천 명이 앉을 만하고, 대(臺) 위에 큰 구멍이 가마솥만한 곳이 있어 그 속에서 물이 흘러나와서 가물어도 줄지 않고, 비가 와도 더 많아지지 않는다. 이것이 세 줄기로 나뉘어서 반공으로 쏟아져 내리는데, 한 줄기는 동쪽으로 흘러 낙동강이 되고, 한 줄기는 남쪽으로 흘러 금강이 되고, 또 한 줄기는 서쪽으로 흐르다가 북에 가서 달천이 되어 금천(한강)으로 들어갔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실려 있는 속리산에 대한 설명이다. 『문헌비고』에는 ‘산세가 웅대하여 기묘한 석봉들이 구름위로 솟아 마치 옥부용(玉芙蓉 : 아름다운 연꽃, 눈(雪)의 아칭) 같아 보이므로 속칭 소금강산이라 하게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1970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속리산은 천황봉, 비로봉, 입석대, 문장대, 관음봉 같은 빼어난 자태를 자랑하며 기기묘묘하게 솟아 있는 봉우리들과 함께 국보급 문화재들이 즐비한 법주사가 있다. 국내에 하나밖에 없는 5층 목탑 형식의 법주사팔상전(국보55호)과 석련지(국보64호), 쌍사자석등(국보64호)과 수많은 보물이 이곳의 오랜 역사를 증언해주고 있다. 법주사는 신라 진흥왕 14년에 의신(義信)이 천축으로 구법여행을 갔다가 돌아와 창건한 절이다. 혜공왕 2년에 모악산 금산사를 중창했던 진표율사가 법주사 역시 중창하면서 큰 절의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 고려 충숙왕 때의 문신 박효수는 법주사를 두고 다음과 같은 시 한 편을 남기도 했다.


‘높다란 사면 푸른 연꽃 같은 봉우리, 장갑(長岬)의 신령스런 근원 몇 겹인고. 문장대는 천고의 이끼 그대로 있고, 우타굴(于陀窟) 그늘 만그루 소나무일세. 용이 탑 속으로 돌아가니 진골이 남았고, 나귀가 바위 앞에 누웠으니 성종(聖鐘)을 찾네. 길이 삼한(三韓)을 복되게 하는 건 누가 주인인가. 산호전(珊瑚殿) 위에 자금용(紫金容 : 자금색의 부처의 몸빛)일세.’
한편 신라의 대문장가 고운 최치원은 법주사 일대의 암자를 돌아본 후 ‘도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으나 사람이 도를 멀리하고, 산은 세속을 멀리하지 않으나 세속이 산을 멀리 한다’라고 썼다.





 속리산에 절을 세우라는 진표율사의 계시


전라도 만경현 사람인 진표율사. 그는 변산 선계산의 불사의방(不思議房)에서 온몸을 바위에 내던져 깨뜨리는 참회고행 끝에 지장보살과 미륵보살로부터 법을 받았다. 이후 금산사에 미륵장륙상을 모시고 점찰법회(占察法會)를 열었는데 그 때가 766년이었다. 그 뒤 진표율사가 금산사를 떠나 속리산으로 가던 길에 소가 끄는 수레를 타고 오는 사람을 만났다. 그 수레를 끌던 소들이 진표율사 앞에 무릎을 꿇고 울자 달구지 주인이 물었다. “이 소들이 어째서 스님을 보고 우는 것이며, 스님은 어디서부터 오시는 길입니까” 진표율사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나는 금산사에 사는 진표라는 중인데, 일찍이 변산 불사의방에 들어가 미륵·지장 두 보살 앞에서 친히 계법과 참 패 두 쪽을 받고 절을 세웠다. 오랫동안 수도할 자리를 찾고자 일부러 이렇게 온 것이다. 이 소들이 겉은 멍청하지마는 속은 밝아서 내가 계법을 받은 줄 알고 불법을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에 무릎을 꿇고서 우는 것이다.” 그 사람이 진표의 말을 들은 뒤 이렇게 답했다.


“짐승도 오히려 이와 같은 신심이 있는데, 사람 된 나로서 어찌 마음이 없겠습니까” 그 사람은 낫으로 자기 머리카락을 잘랐고, 진표율사는 자비심으로 그를 삭발해주고 제자로 삼았다. 그들은 속리산 골짜기 동구 안에 이르러 길상초가 난 곳에 표시를 해두고 강원도 명주를 거쳐 개골산(금강산)으로 들어가 발연사라는 절을 세웠다. 진표율사는 발연사에서 점찰법회를 열고 7년 동안 머물며 대중을 교화하다가 다시 불사의방으로 돌아왔다. 그 때 속리산에서 영심, 융종, 불타 세 사람의 승려들이 진표율사의 처소로 찾아와서 청했다. “우리들은 천리를 멀다 않고 와서 계법을 구하오니 원컨대 불교에 들어가는 이치를 가르쳐 주소서.” 그들의 말에 율사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세 사람이 복숭아나무에 올라가 거꾸로 떨어져 용맹스럽게 참회를 하자 율사가 그제야 교를 전하고 머리를 물로 씻어주었다. 그리고 지장보살과 미륵보살에게서 직접 받은 의발과 경전, 법구를 그들에게 주면서 말했다. “내가 이미 너희들에게 부탁하노니, 이것을 가지고 속리산으로 가면 산에 길상초가 난 곳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곳에 절을 세우고 이 교법에 의하여 널리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을 가지고 후세에 전파하라.” 영심 등 세 사람은 진표율사의 계시를 받들어 속리산으로 향했다. 길상초가 난 곳에 절을 세우고 길상이라고 하고 점찰법회를 크게 열었다. 『삼국유사』에 실린 위의 기록과 법상종 근본도량으로 내려온 법주사의 역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그 때 영심이 창건한 길상사가 현재의 법주사임을 알 수 있다.


나라 안에는 진표율사가 개창한 절들이 많이 있다. 김제의 금산사와 금강산 발연사, 그리고 신라 헌덕왕의 왕자였던 심지가 영심으로부터 다시 진표율사의 의발과 법구를 전수받고 개창한 팔공산 동화사 등이 그의 법맥을 이은 절들이다. 이 절들은 모두 고려시대를 통해 법상종의 중심 도량이 되었다.





 속리산의 영험한 기운을 담은 전설들


속리산 수정봉에는 거북바위전설이 있다. 당나라 태종이 어느 날 세수를 하는데, 세숫물 속에서 거북형상을 보고 이상히 여겨 술사에게 왜 그런가 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가 대답하기를 ‘당나라의 재화가 동쪽에 있는 나라로 빠져 나가고 국운이 쇠퇴할 것’이라고 했다. 당 태종은 급히 사람들을 보내 거북바위를 찾아내게 한 후 목을 자르게 했다. 그러자 이 바위에 서 피가 솟아올랐고, 그 등에 석탑을 세워 다시 일어서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또한 속리산에는 세조와 관련된 설화가 여러 가지 전해온다. 세조의 행렬이 보은읍을 지나 속리산 쪽의 고개에 올라섰을 때, 늙은 중이 나타나 “오봉산 아래 행궁을 짓고 쉬어 가시오”라고 말한 뒤 구름처럼 사라졌다. 세조는 중의 말대로 그곳에 행궁을 짓고 북을 달아 백성들에게 시간을 알려주게 했다. 그 후 노인이 나타난 고개를 미륵불이 변신해 등장한 곳이라 하여 ‘미륵댕이 고개’라 하고, 행궁을 지었던 곳을 ‘대궐 터’, 북을 달았던 곳을 ‘북 바우’라고 부르고 있다.


말티고개를 넘어온 세조 일행이 상판리에 도착했을 때의 일을 다룬 설화도 있다. 우산 모양의 소나무가 있었는데 세조는 그 소나무에 연(輦 : 임금이 타는 가마)이 걸릴 것을 염려했다. 그러자 늘어져 있던 소나무 가지가 하늘로 들어 올려 지더니 길을 비켜줬다. 서울로 돌아갈 때도 이 소나무 밑에 이르자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해 비를 피할 수 있었다. 기특하게 여긴 세조는 소나무에게 정이품의 품계를 내렸고 그래서 이 소나무를 ‘정이품소나무’라고 부르게 됐다고 한다. 이곳 속리산을 올랐던 서경덕은 영욕을 멀리하면서 자연으로부터 얻은 인간의 기쁨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기도 했다.


‘지팡이 짚고 시 읊느라 다리는 절름거리나
행장은 간단하여 번거롭지 않네.
티끌 속의 영욕을 사절하고는
만물 밖의 변화를 차지했네.
산 빛은 사람의 기쁨을 열어주고
시냇물 소리는 세상의 원통함을 호소하네.
유유한 아득한 예부터의 일들
홀로서서 누구와 얘기한단 말인가.’


*속리산의 동식물
속리산 입구에는 600년 이상 된 정이품송이 있고, 소나무들은 해발고도 400~600m, 높게는 1,000m 가까이에 이르기까지 자생한다. 이외에도 신갈나무, 함박꽃나무, 원추리, 물레나무, 숙은노루오줌, 큰개현삼, 망개나무 등이 자란다. 속리산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자주꿩의다리는 세계에서 우리나라에만 자라는 특산식물이다. 까막딱따구리(천연기념물 제
242호), 하늘다람쥐(천연기념물 제328호) 등 희귀동물도 서식하고 있다.



※ 본 콘텐츠는 산림청 격월간지 '매거진 숲'에서 발췌한 기사입니다. 무단 복제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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