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추웠던지 다시는 봄이 오지 않을 것만 같더니 그래도 시간은 어쩔 수 없나봅니다. 얼굴을 스치는 바람결에 봄소식이 닿는듯하더니 겨울처럼 눈이 내렸습니다. 포근해서.. 비가 내리는 곳도 있고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곳도 있는 날.. 서설을 맞으러 인왕산을 올랐습니다.
도심에서는 비가 내려도 산을 오르면 눈을 만날 수 있는 행운이 따라오기도 하지요.
1395년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가 백악과 인왕이 둘러싸고 있는 곳에 궁을 지으며 성을 둘러쌓은 곳.. 그래서 차곡차곡 쌓인 세월의 무게를 이고 있는 산이 인왕산입니다. 서울도성은 인왕, 백악, 낙산에 이어 남산까지 18.2km의 성곽을 얘기하는데요. 저는 오늘 눈 내린 인왕을 오릅니다.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에서 내려 1번 출구로 나와 인왕산 아래 자리 잡은 아파트를 지나면 ‘인왕산가는길’ 이라고 써진 안내표지판을 볼 수 있습니다.
조선건국에 힘을 쏟은 무학대사의 기도터가 아직 남아있는 곳을 지나니 화강암이 불끈 솟아있는 산마루에 정갈히 쌓인 성곽이 보입니다.
독립문에서 올라가면 성 밖에서 오르는 길입니다.
모나지않고 매끈한 화강암 산을 오르다 척박한 환경에서 뿌리를 내리고 잘 자라는 소나무를 만났습니다. 바위산에 몰아치는 바람을 피하느라 키는 작지만 단단히 자라고 있는 모습이지요. 검은 선바위에도 하얀 눈이 쌓여있습니다.
지하철역에 내리던 비는 산을 오르며 소담한 눈으로 내려 쌓여있네요.
눈 내리는 날은 한겨울에도 포근하죠. 3월에 내리는 눈은 더 따뜻합니다.
하얀 솜이불처럼 세상을 덮고 있는 눈밭은 아직 누구의 발자국도 남기지 않았네요.
“뽀드득~ 뽀드득~~”
얼마 만에 들어보는 눈 발걸음 소리인지..
요즘 거리에는 눈이 내리면 염화칼슘으로 녹이기 바빠 눈을 밟으며 걷은 낭만적인 소리는 잊은지 오래인데 어린 시절 들었던 눈 밟는 소리를 인왕산을 오르며 듣습니다. 참~ 마음이 정갈해지는 소리입니다.
하얗게 내린 눈은 나무에도 쌓여 목마른 나무를 적셔줍니다.
가지에 쌓인 눈들은 무게를 이기지못하고 툭~ 툭~ 떨어지기도 합니다.
눈 내린 산을 오르려 계획했기에 아이젠을 챙겨왔지만 봄눈은 미끄럽지도 않네요. 그저 뽀드득.. 밟히기만 합니다.
드디어 성안으로 들어가는 길목입니다.
차곡차곡 쌓은 성곽에는 세월의 흔적이 보입니다. 동글동글 한 돌은 조선 초기에 쌓은 것이고 위에 반듯반듯 쌓여진 돌은 최근에 쌓아 올린 돌입니다.
태조 이성계가 쌓고 세종과 숙종 시절 대대적으로 보수했다고 합니다. 18.2km 구간을 구역별로 나누어 실명제를 실시해서 쌓았답니다.
저 아래 흐리게 보이는 글씨는 어느 지역의 누가 쌓았다는 내용입니다. 한마음 한뜻으로 쌓아올렸을 선조들의 노고가 느껴지는 곳입니다.
성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해발338m 인왕산은 수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산입니다.
무학대사의 기도처였으며 중종과 단경왕후의 애절한 사연이 담긴 치마바위이야기가 있고 어느 효자를 태웠다는 범바위 전설이 새겨진 바위도 있고요. 조선의 최고의 화가였던 재정선의 인왕재색도는 비를 흠뻑 맞고 있는 인왕산을 보고 그린 그림이지요. 재밌는 이야기와 회화의 아름다움을 속삭이며 길을 재촉합니다.
눈 내린 산 눈이 쌓인 나무 소복한 눈을 밟고 걷는 산길..
지금 이 순간 어찌 산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복작거리며 살아가는 도시인들에게 최고 힐링의 시간입니다.
아침 일찍 이산을 다녀간 동물이 있네요. 몸집이 큰 개의 발박닥같은데요.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을 걸어간 그 동물도 행복했겠죠~
다가가 살펴보니 지난해 단풍은 새순을 싸안고 있더군요.올겨울이 유난히 매서울 줄 알았나봅니다.
얼지 말라고 새봄이 올 때까지 포옥 끌어안고 있었나봅니다.
아침엔 봄비가 내리고 산에서는 봄눈이 내리더니 산을 내려올 때 쯤.. 날이 개었네요.
멀리 보이는 북한산의 봉우리도 햐얀눈을 이고 있습니다.
인왕산 성곽길을 둘러 멋진 북한산 봉우리와 눈 맞추고 수성동 계곡으로 내려왔습니다. 수성동 계곡은 조선시대 선비들의 휴양소로도 이름을 날린 곳입니다. 겸재 정선이 그린 ‘장동팔경첩’의 ‘수성동’에는 수성동의 암석과 계곡, 인왕산 기슭의 모습이 그려져있습니다. 그 그림 속에 있는 작은 돌다리가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보이시나요~ ‘기린교’로 추정되는 다리가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눈이 내린 날도 아름답지만 한여름 소나기라고 쏟아지는 날에는 계곡의 물소리가 풍경에 더해 더더욱 시원함을 선물할 것 같습니다.
천천히 걸어 두 시간을 즐긴 산행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습니다. 수성동 계곡을 지나 서촌으로 내려가 경복궁에서 다시 집으로 가야겠습니다.
포근한 봄눈을 만나고 가는 길.. 참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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