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est 소셜 기자단 -/2018년(9기)

<나무가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 정조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노송지대, 나무 심기를 독려했던 정조의 새로운 모습

대한민국 산림청 2018. 5. 9. 17:00



  

 김정호가 만든 대동여지도를 보면 기존의 수원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 이외에 시흥 쪽으로 새로운 길이 생긴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길은 정조(재위 1776~1800)에 의해 만들어진 길로, 그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장헌세자, 추존 장조 1735~1762)의 현륭원의 천봉과 관련이 있습니다. 지금의 화성시 안녕리에 위치한 화산 일대에 현륭원이 조성되면서, 자연스럽게 이곳에 있던 수원부는 옮겨질 수밖에 없었는데요. 

  


사도세자(추존 장조)의 융릉, 본래 현륭원으로 불렸으나 훗날 고종 때 장조로 추존되어 융릉으로 불리게 된다.

  

이때 옮겨진 장소가 바로 지금 우리가 수원하면 떠올리는 수원 화성입니다. 즉 새로운 신도시로서의 수원시가 탄생하게 된 배경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정조를 떠올리면 ‘효(孝)’를 떠올리게 되는데, 아버지에 대한 연민을 가지고 있던 정조는 왕위에 오른 뒤 현륭원을 13차례나 방문했는데요. 정조의 재위 기간을 고려하면 1년에 한 번씩은 방문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의왕과 수원의 경계인 지지대 고개, 지금도 수원에서 사당으로 가는 버스를 타면 지나게 되는 곳이다.

  

이 과정에서 정조는 원행길을 위해 기존의 길이 아닌 시흥과 의왕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길을 만들게 되고, 그것이 ‘대동여지도’에 남겨져 두 개의 길이 만나는 지점이 바로 의왕과 수원의 경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수원의 경계에 들어서면 지지대 고개를 넘게 되는데요. 이곳에는 정조의 효성을 알 수 있는 ‘지지대비’가 세워져 있어 눈길을 끕니다. 

 


지지대비의 모습, 아버지 사도세자를 생각한 정조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다.

지지대비로 올라가는 계단에 새겨진 대(臺)와 지(遲)

  

지지대비는 정조가 원행길에 나서 내려올 때는 발걸음을 재촉해 빨리 왔던 것에 비해, 한양으로 올라갈 때는 행렬이 늦어져 붙여진 이름인데요. 때문에 한자 역시 더딜 지(遲)를 써서, 사도세자를 생각했던 정조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공간입니다. 이와 함께 지지대 고개를 건너면 노송지대를 만나게 되는데요. 노송지대는 말 그대로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는 공간입니다. 

  


지지대 고개를 지나면 만날 수 있는 노송지대

노송지대의 소나무, 최초 500주를 심었지만 지금은 100주가 조금 넘게 남아있다.

  


이 소나무들은 정조가 내탕금을 내려 식목관에서 소나무를 심게 했는데요. 당시 원행길을 따라 이동하는 길에 세워진 소나무의 수는 500주로, 지금처럼 도로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였던 것을 생각한다면 길 주변으로 울창하게 조성된 소나무 숲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소나무의 수가 많이 줄어 100주가 조금 넘게 보호되고 있습니다. 

  


노송지대와 길, 개발과 공존 사이의 고민의 흔적을 볼 수 있다.

 방화수류정의 모습, 용연과 능수버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또한 정조는 식목관에게 능수버들 40주를 심게 했는데, 지금도 수원천 주변에서 능수버들을 볼 수 있습니다. 수원천의 과거 지명이 ‘유천(柳川)’이라는 점에서 과거 수원천 주변으로 능수버들이 만개한 모습은 당시를 살던 백성들에게도 인상적인 장면이 아니었나 싶은데요. 사실 정조는 나무의 중요성에 대해 인식하고 있던 왕이었습니다. 이는 정조 자신이 직접 내탕금을 내려 노송지대와 능수버들을 심게 했던 것 이외에 각 집마다 나무를 심도록 강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수원천과 능수버들, 수원천의 옛 이름인 ‘유천’을 통해 당시의 모습을 생각해볼 수 있다.

화성행궁 앞 느티나무 세 그루, 삼정승 나무로도 불린다.

  


당시 나무의 쓰임새를 생각한다면 수원 화성의 경관과 함께 새로운 부가소득의 창출로서 나무 심기는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의 식목일과 같은 개념으로 봐도 좋지 않을까 싶은데요. 이와 함께 야사에서는 사도세자의 현륭원에서 송충이로 인해 나무들이 말라죽는 일이 벌어지자 이에 정조가 비명에 가신 아버지의 원소를 어지럽힌 송충이를 원망하며 잡아먹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이처럼 지금은 간신히 그 흔적만 남기고 있는 노송지대지만, 나무를 통해 정조와 사도세자의 이야기를 생각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장소로, 수원 화성과 함께 방문해보시면 좋은 현장입니다.




※ 본 기사는 산림청 제9기 블로그 기자단 김희태 기자님 글입니다. 콘텐츠의 무단 복제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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