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est 소셜 기자단 -/2019년(10기)

<걷기좋은 곳> 북악산 한양도성길 산책

대한민국 산림청 2019. 4. 4. 17:00






 북악산은 경복궁을 뒤에서 병풍처럼 둘러서고, 청와대를 품은 서울의 진산(342m)으로 높은 산은 아니지만 그 이름에서 강한 기개와 풍모가 느껴지는 산이다. 무엇보다 조선 초 한양을 수도로 삼으면서 만들어 놓은 한양도성 성곽길이 이어져 있어 오르기 더욱 좋다. 눈이 내리면 성곽길과 어울려 동양화로 변모한 겨울산 풍경이 함께 이어진다. 








서울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놀라움을 느끼는 것이 하나 있다. 서울 도심의 중심을 둘러싼 산들이 있어 도시 한가운데에서도 산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다는 거다. 북악산도 그런 대표적인 곳이다.   







북악산의 들머리로 삼기 좋은 삼청동 삼청공원에 갔다. 이 공원은 무려 1940년에 도시계획공원 1호로 지정된 오래된 공원이다. 옛날엔 청계천의 상류 삼청천이 흘렀고, 지금 삼청터널 자리로 울창한 계곡이 이어져 있는 등 천혜의 명승지였다고 한다. 이순신 장군이 어릴 적 놀러 왔던 곳이라는 동네 주민 할아버지의 말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큰 통유리로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책을 볼 수 있는 ‘숲속 도서관’은 아늑한 기분이 들어 좋다. 





산악지역에 만들어진 한양도성 북쪽의 대문 '숙정문' 


삼청공원에서 나무 산책로를 걸어 오르는 북악산 자락은 온통 소나무 천지다. 나무계단 좌우로 굽고 흰 소나무들이 이어지는데 신기하게도 저마다 다른 모양이다. 흡사 동네잔치에 놀러 온 어르신들이 구부정한 모습으로 신명 나게 어깨춤을 추는 듯했다.


춥지도 않은지 작은 새들이 나뭇가지 위에 앉아 경쾌한 목소리로 수다를 떨고 있었다. 새들이 다른 나무로 후두두 날아갈 적마다 가지 위에 쌓여있던 눈가루가 떨어져 여행자의 머리를 하얗게 염색해 주었다. 





정말 말을 닮은 것 같이 재미있고 정감 가게 생긴 말바위 전망대 쉼터에 가뿐하게 올랐다. ‘북악산 중턱에 올라왔는데 벌써 웬 전망대?' 싶었지만 서울시에서 지정한 전망 좋은 곳이라는 팻말이 있을 정도로 눈 시원한 풍광이 눈앞에 펼쳐졌다. 


남산, 안산은 물론 경복궁도 훤히 보였다. 며칠 전 눈이 내린 덕택에 주변이 모두 한 폭의 수묵화 혹은 동양화다. 얼마 안 되는 높이에 올라왔는데도 이렇게 전망이 시원하게 펼쳐지다니 북악산이 명당이긴 명당이구나 싶었다. 









‘숙정문’ 이정표와 함께 능선을 따라 성곽이 이어졌다. 성곽 길에도 오래전 심어 놓은 소나무들이 살고 있다. 한양도성 북쪽의 대문인 숙정문은 시내 사대문 가운데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는 곳이다. 사람 출입이 거의 없는 산악지역에 만들어져 성문 역할을 하기보다 사대문으로서의 격식을 갖추기 위해 세워졌다. 







이 문은 음양오행 가운데 물을 상징하는 음(陰)에 해당하는 까닭에 나라에 가뭄이 들 때면 이곳에서 기우제를 열었다. 숙정문의 숙정(肅靖)은 '엄하게 다스린다', '정숙하고 고요한 기운을 일으킨다'라는 뜻이 들었다고 한다. 울창하게 뻗어있는 대문 주변의 고목 소나무들과 형형색색의 화사한 단청이 잘 어울렸다. 성곽길은 창의문으로 이어진다. 성곽 주변으로 눈 내린 북악산 팔각정, 불암산, 수락산, 북한산 풍경까지 보여 걸음걸음이 힘이 나고 즐겁기만 했다. 







4소문 가운데 유일하게 원형을 유지한 창의문 


창의문은 인근 주민들에게 자하문(紫霞門)이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가까이에 골이 깊고 물과 바위가 아름다웠던 '자하골'이라는 마을에서 딴 이름이라고 한다. 아직도 '자하문 터널', '자하슈퍼' 등의 이름이 동네에 남아있다.





역사적 가치가 높아 국가지정 사적지였던 이 문은 지난 2015년 12월 국가지정문화재 보물(제1881호)이 되었다. 4소문 가운데 유일하게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점이 작용했다고 한다. 서울엔 4개의 대문과 4개의 소문, 총 8개의 문이 있다. 창의문은 '올바른 것을 드러나게 하다'란 멋있는 뜻을 품고 있다. 서울성곽이 처음 축성된 태조 5년(1396년)에 만들어진 아주 오래된 문이다.



조선시대의 창의문




창의문엔 유독 파란만장한 역사의 이야기가 많다. 이 문은 조선왕조 500년 역사동안 수많은 개폐를 반복하면서, 각종 전란과 반란의 중심에 있었다. 근현대사에 들어서는 간첩 침투, 군사 쿠데타와 같은 국가 위기까지 가까이에서 목도한 역사의 증인이다. 창의문이 처음 역사의 전면에 나타나게 된 건, 인조반정 때. 


1623년(광해군 14년) 3월 12일 밤 인조임금(당시 능양군)를 비롯한 반정군들이 세검정을 지나 창의문을 부수고 궁 안으로 들어가 광해군을 폐위하고 무력으로 정권을 잡았던 사건이다. 창의문 문루 안에 인조반정 때 공을 세운 인사들의 이름을 적은 나무판이 걸려 있어 눈길을 끈다. 반정 때 공을 세운 김류, 이귀, 이괄, 원두표 등 1등 공신에서 3등 공신까지의 공신명이 기록된 현판이다.





창의문을 지날 때 잠시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면 오래된 벽화를 감상할 수 있다. 그런데 천장 벽화에 웬 봉황새를 닮은 닭이 들어가 있다. 인왕산에서 내려오는 산세가 흡사 지네를 닮아 지네의 독기가 문을 넘어 궁궐에 이른다 하여, 창의문 천장에 지네의 천적인 닭을 그려 넣은 것이라고. 실제로 지네들은 북악산, 인왕산처럼 돌이 많은 산에서 산단다. 







문을 지나면 두툼한 옛 돌계단을 걸어올라 이층에 있는 문루(門樓)에 꼭 올라 가봐야 한다. 문루는 성문 위에 지은 조망좋은 공간이다. 북악산과 인왕산이 보이는 전망도 좋고, 무엇보다 창의문 곳곳의 옛스러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말 '막새', 한자로 와당(瓦當)이라고 하는 지붕의 암수 기와와 처마 끝의 물고기 모양 등은 눈길이 머무는 멋진 예술 작품이다. 삼장법사, 손오공 등 서유기의 주인공들이 줄지어 있는 처마 위 잡상은 익살스럽기 만했다.



※ 본 기사는 산림청 제10기 블로그 기자단 김종성 기자님 글입니다. 콘텐츠의 무단 복제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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