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청 블로그 주부 기자단 장철순
바람이 분다. 겨우내 사무치게 기다렸던 훈풍이다.
훈풍의 향내음을 따라가 본다. 자세를 최대한 낮추고 낮추어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는다. 돌 틈 사이로 살며시 고개를 내민 봄꽃들, 지나는 이들에게 숨바꼭질 하듯 '까꿍'하고 얼굴을 내민다.
솜털이 뽀얀 꽃다지
꽃이 다닥다닥 붙어 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마치 갓난아기의 얼굴을 보는 듯하다.
옛날 옛날에 평생 동안 단 한 번 밖에 명령을 내릴 수 없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왕이 있었어요. 그는 자신의 운명을 결정한 별들을 원망하고 어느 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단 한 번 밖에 내릴 수 없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내 운명을 결정한 별들아! 모두 하늘에서 떨어져 땅에 꽃이 되어 피어 나거라."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하늘의 별들이 우수수 떨어져 땅에 떨어져 순식간에 노랗고 작은 꽃들로 피어났지요. 그 작은 꽃이 바로 민들레랍니다.
이른 봄 강남 갔던 제비가 올 즈음 핀다는 제비꽃이다.
기다란 꿀주머니가 오랑캐의 머리 모양을 닮았다고 '오랑캐꽃'이라고도 하고, 바짝 땅에 엎드려 흙을 뚫고 올라와 앉아 핀다 해서 '앉은뱅이꽃'이라고도 하는 정겨운 꽃이다. 오늘 내 눈에 들어온 모습은 앉은뱅이꽃이 어울린다.
열매 모양이 개의 불알을 닮았다 하여 개불알풀, 큰개불알풀이지만 이름이 민망하다고해서 봄까치꽃이라고도 한다.
앉아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볼수록 웃음이 절로 난다. 작고 앙증맞은 것이 꽃 가장자리는 푸른빛을 띠고 가운데 비행선이 너무도 또렷하다. 작지만 화려한 모습으로 누군가를 유혹하는 모습은 풀꽃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인가 보다. 양지 바른 곳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재잘거리는 모습이 정겹다. 너무도 앙증맞고 귀여워서 다리에 쥐가 나도록 쪼그리고 앉아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얼어붙은 땅에서 어찌 겨울을 견뎠냐고 서로에게 안부를 건네는 듯하다.
금방이라도 손을 대면 톡하고 터질 것만 같은 녀석들도 있다.
나무 위에 연꽃을 닮은 꽃이 핀다하여 목련
무거운 털외투를 한 겹 벗어 던지고 이제 기지개를 펴고 있는 목련꽃 살이 보인다. 정말 자세히 보았다. 오랜 시간 그 자리에 서서 말이다.
솜털이 보들보들한 두꺼운 외투가 어깨에서 '툭'하고 떨어져 나가더니만 한참이 지나서야 속옷을 반쯤 벗기 시작한다. 잠시 후에 드러내는 뽀얀 속 살! 나도 모르게 만져 보았다.
진달래
새악시 볼처럼 발그레한 모습으로 한껏 볼에 분홍빛을 머금고 있다. 내일이 궁금해진다.
이른 봄 서둘러 피는 꽃 대부분이 잎보다 먼저 꽃을 피우듯이 산수유도 예외는 아니다
노란 우산살을 펼쳐 놓은 듯 피는 꽃, 그 옆에 시샘하듯 생강나무가
"나 여기 있어요~"하며 꽃망울을 드러낸다. 정말 슬그머니 꽃망울을 비벼보니 생강냄새가 난다.
봄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개나리
벚꽃도 내일이 궁금해지기는 마찬가지다. 내일이면 피었을까?
가만히 땅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봄꽃들을 구경하다보면 어느새 해는 중천에 와 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지 하는 순간 "내게도 눈길 한 번 주세요" 한다.
하마터면 그냥 지나칠 뻔 했다. 바로 도장나무라 불리 우는 회양목이다.
나무를 아는 사람만이 볼 수 있는 꽃이라는데 내 눈에도 들어 왔다. 통통한 초록 얼굴이 궁금했는데 그것이 꽃눈이었다!
더 가까이 가 보았다.
길게 늘어진 수꽃이 핀 개암나무
수꽃만 있는 줄 알았는데 그 옆에 아주 선명한 꽃분홍색을 띤 암꽃이 피어 있었다. 정말 이렇게 작고 어여쁜 꽃은 본 적이 없다. 보고 또 보고, 찍고 또 찍고 ... 지나는 사람들에게 이리 와서 이 꽃을 보라고 했다. 모두들 놀란다. "이 나무도 꽃이 핍니까?" "네" 이게 바로 개암나무 암꽃과 수꽃이지요.
바람 불어 좋은 날 낮은 자세로, 더 낮은 자세로 봄꽃들을 실컷 보았다. 하얀 솜털 속에 꼭꼭 숨겨둔 비밀들을 맘껏 훔쳐보았다.
작은 생명들이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계곡의 물과 얼었던 땅을 녹이며 흙을 뚫고 올라와 우리의 오감을 즐겁게 해주는 봄날이다.
남쪽에선 벌써 꽃소식이 들려온다.
머지않아 우리 집 앞들에도 꽃 잔치가 벌어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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