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est 소셜 기자단 -/2014년(5기)

유관순 누나의 숨결을 따라 걷는 매봉산

대한민국 산림청 2014. 3. 23. 10:30

유관순 누나의 숨결을

따라 걷는 매봉산

 

 

산림청 블로그 일반인 기자단 유태영

 

 

 

 천안은 흔히 충절의 고장이라고도 합니다. 이유인 즉 독립 기념관 외에도 유관순 열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관련 유적이 많이 있습니다. 유관순 누나는 이화학당 재학 중 3ㆍ1운동이 일어나자 학생들과 함께 가두시위를 벌였습니다.


당시 학교가 휴교에 들어가자 만세 시위를 지휘하기 위해 고향인 천안 병천으로 내려와 1919년 4월 1일, 수 천명의 군중이 모인 아우내 장터에서 유관순 누나는 미리 준비한 태극기를 군중들에게 나눠 주고 시위대열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를 외쳤습니다.
일제는 유관순 누나는 독립만세운동의 주동자로 체포해 서대문형무소에 감금되어 옥중에서도 계속 독립만세를 외치다가 모진 고문을 이기지 못해 1920년 꽃다운 나이에 순국했습니다.

 

천안시 동남군 병천면 매봉산 자락에 위치한 유관순 열사 기념관은 기미독립운동에 앞장섰던 유관순 열사의 애국애족 정신을 기리기 위해 열사의 탄신 100주년을 기념해 2003년 4월 1일 개관했으며, 추모각, 초혼묘, 동상 및 순국자 추모각, 기념공원 등을 갖추고 있습니다.

 

 

 

매봉산 자락 유관순 누나의 숨결을 따라 초혼묘, 봉화지, 생가까지 산책길을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추모각 바로 아래 왼쪽에는 물맛이 좋은 약수인 매봉정수가 있습니다.
산행을 하기 전 목을 축이기에도 좋고 물통에 물을 가지고 산행을 하면 아주 좋습니다.

 

 

 

 

매봉정수 옆으로 난 산길은 산행이라기라 보다 산책로인 듯 길이 잘 닦여져 있습니다.

 

 

 

길을 따라가다 보면 돌들에 글들이 새겨져 있는데요.

 

 

 

이화학당을 재학한 유관순 누나를 길이기 위해 많은 이화여고 학생들이 추모글들을 적혀져 있습니다.
하나 하나 글을 읽다 보면 유관순 누나의 모습이 떠오르게 되네요

 

 

 

 

약 10분정도 산길을 따라 가다 보면 유관순 누나의 초혼묘가 보이는데요. 유관순열사가 1920년 9월 28일 오전 8시 20분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 이화학당 주선으로 이태원 공동묘지에 안장됐으나 이후 이태원 공동묘지가 일제의 군용기지로 쓰이게 됨에 따라 미아리 공동묘지로 이장하는 가운데 열사의 유적은 흔적도 없이 망실되었습니다. 이에 열사의 원한을 풀어 드리고 영혼을 위로해 편히 잠드실 초혼묘를 매봉산 중턱에 봉안했습니다. 초혼묘는 6각의 뿔형태로 각 면에는 열사의 기도문을 비롯해 비문이 적혀 있습니다.

 

 

초혼묘에서 잠시 시간을 가진 뒤 200m를 더 오르면 매봉산 정상 부근에 3.1 운동 당시 이 봉화탑에서 아우내와 가까운 매봉산과 인근의 24개소에 봉화를 올려 다음날 예정된 거사를 알림으로써 시작했습니다. 만세운동의 횃불을 올린 봉화탑에서 유 열사의 혼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금 올라왔더 길이 유관순 누나가 봉화를 올리고 아우내장터로 내려왔던 길이겠네요.

 

 

 

이렇게 봉화탑을 지나 반대편으로 내려가면 병천면 유 열사의 용두리 생가지가 위치해 있습니다.

 

 

그날 생가지에서 햇불을 들고 이곳을 올라 왔겠죠. 이 산행은 열사의 길을 반대로 따라가고 있는 듯 합니다.

 

 

 

멀리 열사의 생가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유관순 열사 생가지는 봉화지와 함께 1972년 10월 14일 사적 제230호로 지정됐었습니다. 1919년 4월 1일 아우내 만세운동 당시 일본관헌들이 가옥과 헛간을 불태워 유품 한 점 없이 전소되고 빈터만 남아 있었던 것을 1991년 12월 30일 복원한 곳입니다.

 

 

 

생가 안방에는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을 논의하는 모습을, 건넌방에는 태극기를 제작하는 모습을 밀랍인형으로 재현해 놓아 그 날의 생생함을 더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숨결을 따라 걷다가 돌아오는 길에 열사의 부모님 합장묘를 보게 되었어요.
보훈처 공훈록은 “1919년 4월1일(음력 3월1일) 아우내 장터의 만세 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일본 헌병들은 시위군중을 추격하며 발포하고 칼로 찔렀다”고 전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유관순 열사의 아버지 유중권 열사와 어머니 ‘이씨’ 등 19명이 현장에서 순국했다고 합니다.

 

 

 

 총과칼 앞에 만세운동을 하고 이 땅에 지키기 위해 자신의 잠재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조국을 지키기 위해 고귀한 목숨을 바쳤던 유관순 열사의 숨결을 느꼈던 산행이었습니다.
순국선열과 민주열사들의 희생 아래 지금의 살기 좋은 대한민국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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