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촌에살어리랏다 11

<산촌에 살어리랏다! 귀산촌 이야기> 자연의 치유 능력 믿고 귀산촌 준비!

대학 교수인 김용길씨는 2009년 갑자기 찾아온 ‘난치성 근육질환’으로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병원을 전전해 봤지만 원인을 알 수 없는 것은 물론 근본적인 치료도 불가능하다. 증상이 심할 때면 약물에 의존할 뿐이다. 언제 찾아올지 모를 근육경직의 공포 속에서 보내던 2012..

<산촌에 살어리랏다! 귀산촌 이야기> 산과 연구실을 오가는 임산물 창업인 ①

산양삼은 6차산업의 최적 아이템 제도의 정비를 통해 소비자의 신뢰를 획득할 수 있는 토대는 마련되었지만 문제는 임가 입장에서 생산성이다. 과거에 비해 생산성은 떨어졌지만 관심이 높아지면서 재배면적은 늘어 머지않아 판로가 문제가 될 시점이 곧 도래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산촌에 살어리랏다> 내장산 산촌에서 꿈 이룬 청춘! ①

성공 귀산촌人 - 오덕수씨 오덕수씨는 전주시에서 작은 IT업체를 운영하던 이른바 벤처기업가였다. 2013년 화재로 모든 것을 잃으면서 꿈은 날아가고 그는 집에 틀어박혀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 지인이 바람이나 쐬러가자며 데리고 온 곳이 장성 별내리마을이었다. 그의 지인..

<산촌에 살어리랏다! 귀산촌 이야기> 허브향 가득한 산촌생활 ②

성공 귀산촌人 - 복영옥씨 평생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학원은 접고 내려왔지만 서울에서부터 운영하는 회사는 그대로 가지고 내려왔다. ㈜메사코사(www.mesacosa.co.kr)다. 메사코사는 라틴어로 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뜻으로 아로마테라피를 통해 몸과 마음을 정화한다는 생각..

<산촌에 살어리랏다! 귀산촌 이야기> 마을활동가 - 윤영민

성공 귀산촌人 - 윤영민씨 적극적으로 귀산촌 문화를 만들다 마을이 활성화되면서 가장 크게 바뀐 것은 마을의 인구 구성이었다. 그가 처음 귀산촌할 당시만 해도 마을의 평균연령이 70세가 넘었는데 지금은 40대로 뚝 떨어졌다. 마을의 50가구 중 16가구 60명이 귀산촌한 사람들이다. 인구..

<산촌에 살어리랏다! 귀산촌 이야기> 마을활동가 - 윤영민

성공 귀산촌人 - 윤영민씨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난 1980년 광주에서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윤영민씨의 삶을 지배했던 것은 80년 5월 광주였다. 그의 삶의 이유는 ‘살아남은 자의 몫을 하는 것’이었다. 학생운동, 노동운동으로 불같은 삶을 살았다. 그가 사회운동을 접고 산촌 마을활동..

<산촌에 살어리랏다! 귀산촌 이야기> 도시생활에 지쳐 무작정 귀촌 후 교육자로! ①

<산촌에 살어리랏다! 귀산촌 이야기> 도시생활에 지쳐 무작정 귀촌 후 교육자로! ① - 윤요왕 윤요왕씨는 시민단체 활동가였다. 서울의 천주교인권위원회와 원주의 정의평화위원회가 그의 주 활동무대였다. 시민단체의 활동이 가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은 변함없지만 시대상황에 따라..

<산촌에 살어리랏다! 귀산촌 이야기> 내일이 아닌 오늘을 선택한 귀촌 ②

<산촌에 살어리랏다! 귀산촌 이야기> 내일이 아닌 오늘을 선택한 귀촌 ② - 박기윤 수행과 농사는 둘이 아니다 수행과 농사는 둘이 아니다. 수행이 곧 농사고, 농사가 곧 수행이라는 선농일치는 다시 풀자면 농사일이 수행만큼이나 힘들고, 수행이 산속 오지에 홀로 동떨어져 깨달음을..

<산촌에 살어리랏다! 귀산촌 이야기> 내일이 아닌 오늘을 선택한 귀촌 ①

<산촌에 살어리랏다! 귀산촌 이야기> 내일이 아닌 오늘을 선택한 귀촌 ① - 박기윤 경북이 고향인 박기윤씨는 대학진학과 함께 서울로 올라와 20여년을 살았다. 직장생활도 하고 조그만 개인사업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에게 사고가 생겼다. 사고의 여파로 부모님이 잇따라 사망..

<산촌에 살어리랏다! 귀산촌 이야기> '감'으로 마을의 미래를 걸다 ①

<산촌에 살어리랏다! 귀산촌 이야기> '감'으로 마을의 미래를 걸다 - 동상면사람들 유승정 동상면에서 나고 자란 유승정씨에게 귀산촌이란 말은 낯설다. 전주에서 중·고등학교를 마치고 직장생활을 하며 결혼할 때까지 15년을 살았다. 하지만 그는 한 번도 전주 사람이라는 생각이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