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 27

<산촌에 살어리랏다! 귀산촌 이야기> 마을활동가 - 윤영민

성공 귀산촌人 - 윤영민씨 적극적으로 귀산촌 문화를 만들다 마을이 활성화되면서 가장 크게 바뀐 것은 마을의 인구 구성이었다. 그가 처음 귀산촌할 당시만 해도 마을의 평균연령이 70세가 넘었는데 지금은 40대로 뚝 떨어졌다. 마을의 50가구 중 16가구 60명이 귀산촌한 사람들이다. 인구..

<산촌에 살어리랏다! 귀산촌 이야기> 마을활동가 - 윤영민

성공 귀산촌人 - 윤영민씨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난 1980년 광주에서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윤영민씨의 삶을 지배했던 것은 80년 5월 광주였다. 그의 삶의 이유는 ‘살아남은 자의 몫을 하는 것’이었다. 학생운동, 노동운동으로 불같은 삶을 살았다. 그가 사회운동을 접고 산촌 마을활동..

<산촌에 살어리랏다! 귀산촌 이야기> 귀산촌은 삶의 목표가 바뀌는 것②

성공 귀산촌人 - 박희축씨 시대의 흐름 읽지 못하면 시골도 희망 없어 그는 현재 약간의 농사를 짓고 있다. 조금의 텃밭과 5백 평에 고사리를 심었다. 고사리는 지인들을 통해서 팔고 있다. 그가 활동하며 만들어 놓은 도시 네트워크가 한몫을 하는 것이다. 전에는 2천5백 평에 농사를 지었..

<산촌에 살어리랏다! 귀산촌 이야기> 귀산촌은 삶의 목표가 바뀌는 것①

성공 귀산촌人 - 박희축씨 충북 옥천군의 어느 사립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박희축씨는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교육자로서의 능력이 아니라 인간관계를 잘 풀어야만 교감이나 교장이 될 수 있는 현실 앞에서 좌절했다. 그는 명리학을 공부하면서 “한적한 곳에서 사주카페를 운영..

<산촌에 살어리랏다! 귀산촌 이야기> 도시생활에 지쳐 무작정 귀촌 후 교육자로! ②

성공 귀산촌人 - 윤요왕 씨 학교가 폐교하면 마을도 붕괴된다! 열심히 한 탓일까? 마을에 들어온 지 몇 해되지 않은 2008년 이장이 되었다. 3년 임기였다. 마을엔 농림부의 농촌종합개발사업이 한창이었다. 대규모의 정부예산이 투자되어 큰 건물도 들어서고 방과후 공부방에 대한 주민들..

<산촌에 살어리랏다! 귀산촌 이야기> 도시생활에 지쳐 무작정 귀촌 후 교육자로! ①

<산촌에 살어리랏다! 귀산촌 이야기> 도시생활에 지쳐 무작정 귀촌 후 교육자로! ① - 윤요왕 윤요왕씨는 시민단체 활동가였다. 서울의 천주교인권위원회와 원주의 정의평화위원회가 그의 주 활동무대였다. 시민단체의 활동이 가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은 변함없지만 시대상황에 따라..

<산촌에 살어리랏다! 귀산촌 이야기> 내일이 아닌 오늘을 선택한 귀촌 ②

<산촌에 살어리랏다! 귀산촌 이야기> 내일이 아닌 오늘을 선택한 귀촌 ② - 박기윤 수행과 농사는 둘이 아니다 수행과 농사는 둘이 아니다. 수행이 곧 농사고, 농사가 곧 수행이라는 선농일치는 다시 풀자면 농사일이 수행만큼이나 힘들고, 수행이 산속 오지에 홀로 동떨어져 깨달음을..

<산촌에 살어리랏다! 귀산촌 이야기> 내일이 아닌 오늘을 선택한 귀촌 ①

<산촌에 살어리랏다! 귀산촌 이야기> 내일이 아닌 오늘을 선택한 귀촌 ① - 박기윤 경북이 고향인 박기윤씨는 대학진학과 함께 서울로 올라와 20여년을 살았다. 직장생활도 하고 조그만 개인사업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에게 사고가 생겼다. 사고의 여파로 부모님이 잇따라 사망..

<산촌에 살어리랏다! 귀산촌 이야기> '감'으로 마을의 미래를 걸다 ②

<산촌에 살어리랏다! 귀산촌 이야기> '감'으로 마을의 미래를 걸다 ② - 동상면사람들 유승정 상품의 다양성으로 마을 소득 안정화 사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감을 이용한 상품의 다양성은 이미 실현되었다. 감식초, 감잎차, 곶감, 상품성이 떨어지는 감을 이용한 수정과까지 만들었다...

<산촌에 살어리랏다! 귀산촌 이야기> '감'으로 마을의 미래를 걸다 ①

<산촌에 살어리랏다! 귀산촌 이야기> '감'으로 마을의 미래를 걸다 - 동상면사람들 유승정 동상면에서 나고 자란 유승정씨에게 귀산촌이란 말은 낯설다. 전주에서 중·고등학교를 마치고 직장생활을 하며 결혼할 때까지 15년을 살았다. 하지만 그는 한 번도 전주 사람이라는 생각이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