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기는 산림청/나는 임업인이다 39

<산촌에 살어리랏다! 귀산촌 이야기> 마당이 있는 삶을 꿈꾸다! ②

성공 귀산촌人 - 김미진씨 산촌유학 등 마을사업 참여 그 무렵 소호마을에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산촌유학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녀가 소호마을로 들어온 계기를 만들어 준 유영순씨가 김수환씨와 함께 소호산촌유학센터(cafe.daum.net/soho-sanchon)를 만든 것이다. 그녀가 할배라고 부르는 김..

<산촌에 살어리랏다! 귀산촌 이야기> 마당이 있는 삶을 꿈꾸다! ①

성공 귀산촌人 - 김미진씨 울산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김미진씨는 2004년 1월 모임의 수련회에 따라나섰다가 소호마을에 처음 왔다. 마을을 산책하다 들른 소호분교 운동장 가운데 우뚝 선 느티나무를 보고, 이런 학교에 아이가 다니면 행복하겠단 생각을 했다. 아이가 초등학교 ..

<산촌에 살어리랏다! 귀산촌 이야기> 허브향 가득한 산촌생활 ②

성공 귀산촌人 - 복영옥씨 평생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학원은 접고 내려왔지만 서울에서부터 운영하는 회사는 그대로 가지고 내려왔다. ㈜메사코사(www.mesacosa.co.kr)다. 메사코사는 라틴어로 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뜻으로 아로마테라피를 통해 몸과 마음을 정화한다는 생각..

<산촌에 살어리랏다! 귀산촌 이야기> 허브향 가득한 산촌생활 ①

성공 귀산촌人 - 복영옥씨 아로마테라피를 배우고 싶어서 나이 40에 영국 유학까지 다녀온 그녀는 한국인 최초로 국제적으로 권위 있는 아로마테라피 자격증 보유자(ITEC)이다. 서울에서 아로마테라피 아카데미를 운영하며 대학강의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던 그녀는 어느 날 드라마의 ..

<산촌에 살어리랏다! 귀산촌 이야기> 마을활동가 - 윤영민

성공 귀산촌人 - 윤영민씨 적극적으로 귀산촌 문화를 만들다 마을이 활성화되면서 가장 크게 바뀐 것은 마을의 인구 구성이었다. 그가 처음 귀산촌할 당시만 해도 마을의 평균연령이 70세가 넘었는데 지금은 40대로 뚝 떨어졌다. 마을의 50가구 중 16가구 60명이 귀산촌한 사람들이다. 인구..

<산촌에 살어리랏다! 귀산촌 이야기> 마을활동가 - 윤영민

성공 귀산촌人 - 윤영민씨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난 1980년 광주에서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윤영민씨의 삶을 지배했던 것은 80년 5월 광주였다. 그의 삶의 이유는 ‘살아남은 자의 몫을 하는 것’이었다. 학생운동, 노동운동으로 불같은 삶을 살았다. 그가 사회운동을 접고 산촌 마을활동..

<산촌에 살어리랏다! 귀산촌 이야기> 귀산촌은 삶의 목표가 바뀌는 것②

성공 귀산촌人 - 박희축씨 시대의 흐름 읽지 못하면 시골도 희망 없어 그는 현재 약간의 농사를 짓고 있다. 조금의 텃밭과 5백 평에 고사리를 심었다. 고사리는 지인들을 통해서 팔고 있다. 그가 활동하며 만들어 놓은 도시 네트워크가 한몫을 하는 것이다. 전에는 2천5백 평에 농사를 지었..

<산촌에 살어리랏다! 귀산촌 이야기> 귀산촌은 삶의 목표가 바뀌는 것①

성공 귀산촌人 - 박희축씨 충북 옥천군의 어느 사립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박희축씨는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교육자로서의 능력이 아니라 인간관계를 잘 풀어야만 교감이나 교장이 될 수 있는 현실 앞에서 좌절했다. 그는 명리학을 공부하면서 “한적한 곳에서 사주카페를 운영..

<산촌에 살어리랏다! 귀산촌 이야기> 도시생활에 지쳐 무작정 귀촌 후 교육자로! ②

성공 귀산촌人 - 윤요왕 씨 학교가 폐교하면 마을도 붕괴된다! 열심히 한 탓일까? 마을에 들어온 지 몇 해되지 않은 2008년 이장이 되었다. 3년 임기였다. 마을엔 농림부의 농촌종합개발사업이 한창이었다. 대규모의 정부예산이 투자되어 큰 건물도 들어서고 방과후 공부방에 대한 주민들..

<산촌에 살어리랏다! 귀산촌 이야기> 도시생활에 지쳐 무작정 귀촌 후 교육자로! ①

<산촌에 살어리랏다! 귀산촌 이야기> 도시생활에 지쳐 무작정 귀촌 후 교육자로! ① - 윤요왕 윤요왕씨는 시민단체 활동가였다. 서울의 천주교인권위원회와 원주의 정의평화위원회가 그의 주 활동무대였다. 시민단체의 활동이 가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은 변함없지만 시대상황에 따라..